김영호 < 경북대 교수 / 경제학 >

중소기업살리기 시책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작년에 신용보증특례대출제를 비롯한 일곱가지의 각종 지원대책이
쏟아지더니 중소기업청 설립이 발표되었다.

이제 한국에 중소기업의 시대가 열릴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선거용
선심정책일까.

다 아는바와 같이 한국경제는 피라미드의 정점인 대기업은 있어도 그것을
받쳐주는 중소기업이 너무 약하다.

대기업이 국내 중소기업으로 부터 조달해야 할 기계설비.소재.부품등의
대부분을 외국 특히 일본에서 가져 왔다.

대외산업종속의 상당부분만큼 국내 중소기업의 배제를 가져 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 대외무역적자의 상당부분을 국내 중소기업의 진흥으로 메울수
있으면, 그것은 한국 민주화의 경제적 기반이 될 뿐만아니라 한국경제
피라미드의 완성을 가져올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기업은 그래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인데 지금의 중소기업정책의 봇물이 한국경제
피라미드에 중소기업의 기반구축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국경제는
WTO체제하에서 중소기업이 없는 기형적인 경제로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세계가 정보화함에 따라 정보네트워크축의 챔피언은 점차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며 중소기업이 아래로부터 정보화를 주도해 나가는
판이다.

라이시 미노동장관의 표현을 빌린다면 대기업군함의 시대가 가고 중소기업
보트선단의 시대가 온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문민정부는 중소기업발전에 운명을 걸었어야 했다.

과거 독제정부가 대기업중심의 경제정책을 했던것 만큼, 혹은 그이상으로
중소기업중심의 경제정책으로 대전환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출범후에도 대기업주도형 경제정책이 지속됐다.

고도성장이 거의 30대대기업에 의해 주도됐는데 여기에 중소기업의 힘이
합쳐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문민정부출범후 중소기업은 마이너스성장을 거듭했고 기업도산은
86~90년의 월평균 3백43개사에서 94년에는 9백38개사로, 95년에는 1천
93개사로 늘어났다.

일본도 외관상 비슷한 것 같지만 한국의 중소기업수가 2백20만개인데 비해
일본은 6백50만개인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3배에 이르는 비율이다.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실시했으나 사채시장이 얼어붙어 중소기업의 자금난
으로 귀결되었고 비자금 파문 또한 대기업의 결제기간연장으로 이어져
중소기업의 자금난으로 귀결되었다.

대기업에의 방만한 금융완화를 규제하기 위하여 은행이 자금을 회수하면
중소기업이 자금난으로 쓰러졌다.

여기에 중소기업이 과거 호황때 돈벌어 부동산에 투기했으나 최근 거품이
꺼지면서 자금난으로 직결됐다.

정부 은행 대기업, 그리고 중소기업 자신의 요인이 합쳐진 것이다.

사양기업이나 불실기업이 쓰러지는 것이야 어쩔수 없지만, "정책도산"
"흑자도산" "연쇄도산"등이 겹쳐 그야말로 "중소기업의 지옥"을 경험하게
된것이다.

"중소기업운영이 6.25피난때 보다 힘들다"는 탄성이 그것을 말한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자금난 인력난 기술난으로 표현되고 있다.

기업을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영세기업(10인이하)으로 분류하면 위로
올라갈수록 삼난이 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삼난은 심각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금은 홍수가 날 지경이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대가믐
꼴이다.

정부가 각종 지원금을 쏟아붓고 있으나 담보물이 없는 영세기업의 경우는
완전히 그림의 떡이다.

한지방의 중소기업관리지도자는 "돈도 상품인데 은행은 돈을 담보를 잡히고
팔고 중소기업은 상품을 외상으로 판다. 이런 불공정이 어디 있으냐"고
불평이 대단하다.

사실상 중소기업 중앙회 대구경북지회에서 담보없이 신용으로 공제기금을
대출해도 회수되지 않는 돈은 0.76%정도밖에 안되는데 시중은행은 담보를
잡고 대출해도 2%가 회수되지 않는다고 한다.

신용대출방법을 현대화하여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최근 한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은행대출의 경우 꺾기관행이 76%나 된다고
한다.

중소기협중앙회에서 이것을 문제삼자 재경원에서 사실조사에 들어갔고
그러자 사실이 들통난 은행지점장은 꺾기를 당한 중소기업인을 불러 당장
대출한 자금을 갚으라고 호통을 쳐 결국 중소기업인만 당했다고 한다.

정부조치와 중소기업현장간에 엄청난 거리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