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24일 아침 미국 ABC TV의 뉴스토론프로 주제는 바로 며칠전에
개봉된 영화 "닉슨"이었다.

TV 뉴스토론프로에 영화가 주제가 된다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영화 "닉슨"은 그만큼 미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닉슨"의 주인공은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다.

감독 올리버 스톤은 "플러툰" "JFK" 등 화제작으로 "영화계의 귀재"란
평가를 받은 인물이고 닉슨역은 연기파로 이름 난 안소니 홉킨스이다.

상영시간이 3시간15분이나 되지만 관객은 숨을 죽이고 영화에 빨려들게
된다는 평판이다.

영화 내용은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닉슨대통령이 사임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그의 성장환경에 연유한 복잡한 성격형성을 묘사하고 있다 한다.

그러나 영화 줄거리를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영화속에서 닉슨은 존 케네디대통령이나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법무장관
암살에 배후에서 관여한 것으로 돼있고 부통령시절엔 CIA나 FBI를 조종해
쿠바의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다는 설정이지만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또 닉슨은 개인적으로 열등감이나 시기심이 심하고 알콜중독증세를 엿보게
하는 극히 불안정한 성격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닉슨의 보좌관이었던 알렉산더 헤이그는 "닉슨은 근무중
술을 입에 대지않았고 감정을 폭발시킨 적도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물론 영화 "닉슨"은 첫머리에서 줄거리중엔 "가설"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고 스톤 자신도 "작품의 질을 높이고 닉슨의 참모습을 그리기 위해선
"가설"의 삽입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토론프로에선 "아무리 영화라 할지라도 실재한 대통령이
실제로 하지않았던 일을 실화인것 처럼 묘사한다는 것은 위험스런 일이고
젊은이들이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기 쉽다"고 비판이 거셌다 한다.

다큐드라마는 "논 픽션"인 다큐멘터리와 "픽션"인 드라마를 혼합한
것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사실을 왜곡하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기 쉽다.

그런 측면에서 작년 11월16일 우리 방송위원회가 정치드라마 "제4공화국"과
"코리아게이트"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유지할 것을 권고한 것은
적절한 일이다.

다큐드라마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라는 상반된 성격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으므로 그 조절이 어려운 일이겠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고증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