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에도 정글이 있다.

한 학문 영역에 하도 많은 유사론이 뒤얽혀 마치 정글과 같아서 어느
이론이 옳고 그른지 모를 형국을 쿤즈가 가리킨 말이다.

지금 12.12 5.18공소를 둘러싼 법리논쟁이야 말로 정글로의 점입이다.

이런 혼란은 인문-사회과학에서 더 심하고 법학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마다 사고와 가치관이 다르니 논리가 다름은 오히려 당연하달수
있다.

또 법의 근본 규범이 정의라는데 큰 반론은 없으나 그 정의란 과연
무엇이냐에 이르면 결국 힘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든다.

그러나 의회주의가 구현되면서 국회를 통과해야 법률이 성립한다.

5.18특별법이 실정법 효력을 가짐은 당연하다.

다만 법률도 최상위법인 헌법에 부합해야 하므로 헌재제도가 있다.

그런데 5.18특별법은 헌재의 결정을 지켜본뒤 국회가 만들었는데도
단 한달만에 위헌제소가 됐으니 모두 당혹할 밖엔 없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법리를 따질 여유도 없을뿐 아니라 비전문인이 이를
이해하고 판단 내리기를 바람은 무리라 여겨진다.

본래 법리논쟁은 명쾌한 논리의 연결이라기 보다 이론을 위한 이론,
이현령비현령에 빠지기 쉬워 나중엔 논자 자신들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혼돈에 빠지는 특성이 있다.

이 오류를 벗어나 보편타당한 판단을 내리는 정도는 결국 실체적 정의,
다름아닌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 그 실체란 10.26에서 12.12 5.18을 거쳐 소위 5공이 탄생하기까지
1년여에 걸치는 정권이동 과정을 말한다.

핵심 대목은 정변과정에서 법이나 순리가 통했느냐, 아니면 무력과 아집이
통했느냐, 또 정권을 내놓은 측이 자발적이었고 그것을 이은 측은 싫은데도
떠맡았느냐 아니냐는 사실문제다.

사태뒤 수년에 걸쳐 양면, 즉 사태의 주동인 신군부의 논리도, 그것이
정권탈취임을 입증한 반대측 논리도 공식-비공식으로 나올 만큼은 나왔다.

또한 이를 종합해 국민 대다수는 마음속으로 판정을 내렸고 그것은 이미
확고한 사회통념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누가 부인하는가.

그 통념이란 한마디로 출발이야 어떻든 신군부가 집권욕을 가지고 초법적
으로 최규하 과도정권을 밀어내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는 사실이다.

여기엔 아무 가감이 없다.

엇갈리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의도 측면으로, 정승화 육참총장의 혐의를 조사함이 의무여서
무력을 썼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백보를 양보해 그것을 인정한다 해도 거기서 집권 합리화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둘째 아무리 정당성없는 정부지만 5-6공 13년동안 형성된 기성질서를
전복함에 수반되는 부작용 우려다.

집권을 불법화할 경우 그 집권자를 정점으로 넓고 깊게 형성돼온
국가-사회적 현상을 뒤엎는데 따른 주저가 공감을 샀다.

그러나 노태우씨의 초상식적 축재 발로로 그 고려사항도 엎질러진 물이
됐다.

이제는 원점회귀 자체가 세계적 웃음거리이고 그럴수도 없다.

명분-실리를 동시에 살리는 헌재등 모든 당사자의 시간끌지 않는 일처리만
남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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