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러분"

희봉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손뼉까지 치면서 사람들의 주의를
모았다.

무엇 때문에 희봉이 저러나 하고 사람들이 일제히 희봉을 쳐다보았다.

"여러분 생각에는 어때요? 이 어릿광대역을 맡은 아이의 모습이 우리중
누구랑 닮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보채와 보옥은 그 아이가 누구랑 닮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상운이 눈치도 없이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난 알아요. 그 어릿광대 아이는 대옥이랑 꼭 닮았어요"

아이쿠, 일이 터졌구나.

보옥이 상운에게 급히 눈짓을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그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어릿광대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대옥의
얼굴을 쳐다보고 하더니, "어쩜. 정말 꼭 닮았네" 하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말에 어릿광대 아이는 신이 나서 대옥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갖다
대며 사람들이 더 잘 비교하도록 해주었다.

보옥은 대옥의 표정을 살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대옥이 어릿광대 아이를 확 밀치더니 대부인의 방을
나가버렸다.

보옥이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상운을 흘겨보았다.

사태가 이렇게 된건 모두 네 책임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상운도 휑하니 방을 나가버렸다.

"취루야, 취루야"

상운이 몸종인 취루를 부르는 소리가 방밖에서 들려왔다.

아이구 내가 좀 심했나.

보옥이 우선 상운부터 달래야겠다고 생각하며 방을 나왔다.

상운이 부름을 받고 달려온 취루와 함께 저 앞에서 총총히 걸어가고
있었다.

보옥이 걸음을 빨리 하여 상운을 따라 미쳤다.

"취루야, 짐을 당장 꾸려라. 내일 날이 밝는대로 여기를 떠나자꾸나"

"그렇게 빨리 떠나요?"

"더 있으면 뭐하니? 남의 눈총이나 받지 뭐"

그 말을 엿듣자 보옥이 더욱 마음이 찔려 상운에게로 바짝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상운이 나를 오해한 모양이구나.

상운이 너도 알다시피 대옥의 성질이 여간 까다로워야지. 그런데
어릿광대 아이를 닮았다고 해봐.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게 뻔하잖아. 난 상운이 네가 대옥에게 원망을
들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상운이 너를 위해서 그렇게 급히 눈짓을 했던
거야. 딴 뜻은 없었어"

"그럼 방금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본 것은 무슨 뜻이에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