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이나 역사정립을 바라보며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과거의 고도성장,
구체적으로는 만불소득과 천억불수출을 구가하면서 왜 부정부패를 새삼
문제삼는가 하는 것이다.

경제는 잘 됐지만 독재와 인권탄압으로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또는 앞으로는 그러한 저지레를
하지말고 최선을 다해 국정을 이끌어 나가도록 본때를 보여야 하기 때문
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미진한 점이 있다.

다시한번 똑바로 생각해 보자.

왜 인권을 탄압했는가.

억울함을 당해서, 또는 얼울한 사람을 보기 딱해서 나선 사람이 혼이났지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린 것은 다니다.

무슨 억울한 일이 그렇게 많았는가.

힘 없는 사람, 그것은 구체적으로 한 노동자일 수도 있고 무고한
시민일수도 있는 그런사람이 권력으로 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저린 식으로 버려 둘수는 없다.

애국을 핑게로 마피아짓을 하는 놈을 놔둘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바르게
살려 할것인가하고 나섰던 지식인 학생들도 그 사람들이다.

당한 사람이나 이들과 아픔을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 단죄만큼 시원한
카타르시스는 없다.

잘 나가던 놈이 고꾸라지면 고소 해하는 대중심리도 가세하게 마련이다.

군인은 일선을 지켜야지 정치적 혼란을 간접침략으로 인식하고 총뿌리를
후방으로 돌리는 버릇은 잘라내고 재를 뿌려야 한다는 사람들도 마음을
놓게 된다.

그러나 처단개혁 말고는 진정한 개혁이 한번도 없었던 우리나라 역사이다.

처단은 처단을 부르다가 끝내 백성의 싫증을 빚어 내는 것도,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된 것도 이나라 역사의 교훈이다.

좀더 지혜를 모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변화를 생각해야 할때라 생각한다.

정통성 없는 권력이 갈수 밖에 없는 독재의 길목에서 진정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가.

인권탄압을 대가로 소위 통치자금을 마련하고 그것을 다시 독재비용으로
쓴것 말고는 없는가.

대기업들이 수백억씩의 돈을 바쳤는데 그 기업과 그 경제는 별탈이
없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정부는 아무렇게나 세금만 받아쓰면 되는 것인지,
은행은 기업이 무슨 돈으로 이자를 내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유수한 상장사의 계리가 저렇게 엉망인데도 주가만 오르면 되는 것인지,
공인회계사는 어떻게 감쪽같이 속았다는 것인지, 기업의 자산운용을
철저하게 감시 안해도 금융기관은 담보만 쥐고도 살아갈수 있는 것인지.

금융기관이 불공정거래를 한다면 건전한 기업이 클수 있는지,
기업이 로비자금을 판촉비 정도로 생각해도 아무 탈이 없는지,
수출이 천억불을 돌파했는데 무역수지가 백억불 적자라면 어떻게 되는지,
기자재의 대부분을 수입한다면 우리 중소기업이 설땅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우리손으로 개발해서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상품은 얼마나 되는지.

자체개발이 많지 않다면 중소기업이 어떻게 기아이윤을 벗어날수 있는지,
농민이 도시로 올라와 영세민이 되고 농촌에서 어렵게 마련한 목돈이
영세기업이 되는데 이들이 망해도 구조조정인지, 독과점시장에 편입되지
않은 중소기업 가운데 마음편한 기업은 얼마나 되는지, 중소기업제품에
진정한 경쟁시장은 있는지, 중소기업이라는 터밭을 잃고 기업가정신은
어디서 꽃필수 있는지.

따지고 보면 고도성장이란 함부로 할게 아니다.

50년대말 울프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적정성장률을 5%라도 과욕이라 했다.

이나라에는 세계수준을 능가하는 학자도 많은데 왜 그들의 이론이 대부분
사회적 정착에 실패하는가.

선의의 독재를 에찬하면서 합리주의사회에서 개발된 이론으로 그들을
거들려는 착란에 빠졌던 것은 아닌지, 더욱이 이들중 부패정권의 들러리가
되었던 심경은 지금 어떠한지 궁금하다.

무리한 고도성장에 가장 앞장섰던 것은 금융이라 하겠다.

인플레에 의한 성장은 한마디로 기업의 정상운영을 가로막고 온통 투기판을
만든다.

부정부패란 그 과정이다.

권력과 유착된 기업은 쉽게 비대해 지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당한다.

독과점이윤이 정상이윤을 몰아낸다.

인플레이득의 원천은 함부로 얻을수 없는 금융자금이 된다.

시중금리보다 절반이 싼 경우에 따라서는 절반의 절반도 안되는 돈을
끌어다가 물건을 사두면 1년에 배가 뛰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자연 차금술에 열을 올렸다.

영국의 한 전기작가는 연금술에 심취했던 뉴톤이 자력과 인력의 존재를
낌새챘지만 교회법이 두려워 사과밭을 팔았다고 했다.

창의력이 전능한 하나님을 따르고 닮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세속의 장애물을
뚫고 올라와 한시대를 풍미하였으며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기초과학 응용과학 그리고 이들의 예술적이고 환상적인 결합을 통하여
또는 무한한 상상력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인류생활의 깊이와 재미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 선진사회의 모습이다.

차금술로는 그야말로 족탈불급이 된다.

창의력 개발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거나 망가진 나라가
발전을 시도하면 하드 브레인만 발달되어 전의 의중을 잽싸게 알아채는
눈치과 남의 것을 흉내내는 눈썰미만 는다.

솔직 보다는 더듬수가 정직보다는 속임수가 판을 친다.

일하는 자리보다 시키는 자리, 정상수입보다 부수입이 더 출세를 가늠한다.

OECD에 가입한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 아니다.

개방시대를 살아 남으려면 과거청산에 나서야 한다.

섣불리 경제 꽁꽁을 외치기보다는 과감히 연금술에 도전해야 할 때이다.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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