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채의 생일날이 되자 대부인이 거처하는 방에 잔치상이 차려졌다.

잔치상 주위에는 외부에서 초대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집안
사람들뿐이었다.

대부인은 보채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어 꽃무늬가 새겨진 금비녀를
꽂아주었다.

비녀를 꽂은 보채의 모습은 처녀티가 완연하였다.

"보채는 이제 시집을 가도 되겠다"

희봉이 환한 웃음 머금은 채 농담을 던지며 슬쩍 보옥의 표정을 훔쳐
보았다.

희봉은 보옥의 아내감으로 일찍부터 보채를 꼽고 있는 것이었다.

보옥이 좋아하는 대옥은 아름답긴 하나 병약하고 신경질적인 구석이
있어 희봉으로서는 어쩐지 꺼려지기만 하였다.

보옥은 희봉의 말이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긴
하였지만 눈길은 보채 쪽으로 자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음식들을 맛있게 먹은후 뜨락에 가설된 무대에서 공연되는
연극을 볼 채비를 하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보채이니까 보채가 연극을 먼저 골라보지"

대부인의 제안에 보채는 눈치 빠르게 대부인의 취향에 맞는 연극을
골랐다.

"서유기"중의 한 막이었다.

그 연극은 떠들썩하고 우스꽝스러운 골계극의 일종이었다.

그 다음, 대부인은 이번 생일잔치 준비에 애를 많이 쓴 희봉에게 연극을
고르라고 하였다.

"저는 그럼 "유이가 옷을 전당포에 맡기다"를 고르죠"

그 연극 역시 대부인의 취향을 고려해서 고른 셈이었다.

그렇게 대부인이 지정하는 순서에 따라 대옥 보옥 상운 영춘 석춘들도
연극을 하나씩 골랐다.

초청된 극단이 아동극단이었으므로 골라진 연극들이 대개 짤막한
것들이었다.

그 연극들이 고른 순서에 따라 무대에서 하나 하나 공연되었다.

보옥이 보니 오늘은 대옥보다 비녀를 꽂은 보채가 더 아름답게 여겨져
보채 옆으로 가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연극구경에 몰두하여 깔깔거리며 웃음보를 터뜨리고 할 때
보옥은 슬그머니 보채의 손을 잡아보곤 하였다.

하지만 몇 사람 건너에 앉아 있는 대옥이 보옥이 보채에게 수작을
부리는 것을 놓칠 리 없었다.

한차례 연극이 끝나자 이번에는 주연이 베풀어졌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각종 술이 상위에 놓여지고 사람들은 그 술을
맛보며 계속 연극을 구경하였다.

대부인의 지시에 따라 보채를 필두로 하여 사람들이 또 차례로 연극을
골랐다.

이번에 보채가 고른 연극은 "노지심이 술에 취해 오대산을 소란케 하다"
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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