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경제부총리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정치-경제 불가분론을 폈다.

"나라를 운영하다 보면 경제논리로만 움직일 수는 없다. 국민들의 삶을
보장하려는 행위를 정치논리로만 몰아세울 수는 없지 않느냐"는 요지였다.

그의 발언은 ''역시 정치권 출신''이라는 이미지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부총리 자리에 앉자마자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진대 총선 시즌이 되면
오죽하겠느냐는 평까지 나오기도 했다.

"민감한 시기인 만큼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주문이었다"
고 나중에 해명해 왔다.

사실 논리로 친다면 둘 사이는 필요충분조건 정도로 보면 무난하다.

경제는 ''한정돼 있는 공급''과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전제로 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욕구를 채우는 행동양식이 바로 경제다.

피나는 혈전과 승패가 전제돼 있다.

그래서 경제정책의 목적도 ''재화와 용역의 효율적인 분배와 소득불균형의
시정''에 두어져 있다.

이상적인 완전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정자가 개입해서 가급적이면
균등한 재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치는 사회에서 빚어지는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총체적
행위다.

대상이 경제일 수도 있고 문화나 외교일 수도 있다.

모든 정책은 정치권행사의 양태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시장에서 빚어지는 실패를 바로잡는 행위도 정치행위의 한
범주일 수 있다.

꼭 경제논리로만 풀어야 한다고 우기는 것도 무리다.

언제나 상극도 아니다.

한쪽이 무리를 하지 않는한 상호보완적인게 일반적이다.

편견을 갖고 몰아세우지 말라는 부총리의 말이 오히려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 기자가 굳이 둘을 갈라가며 경제팀에게 ''경제논리수호''를
당부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을 때의 폐해를 보아온 때문이다.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논리가 유린당했을 때 초래되는 왜곡과 부작용,
그리고 다시 바로잡는 과정에서 치러온 시행착오의 비용은 순전히 경제논리
를 존중하지 않은데서 온 것이다.

틀린 방향인줄 뻔히 알면서도 소득세 면세점을 해마다 높인다.

국민개세의 원칙은 더이상 조세원리가 아니다.

부가가치세 면세점과 과세특례 대상도 계속 확대한다.

소비세인 부가세가 어느새 소득재분배 역할까지 맡게 변질됐다.

증시부양책은 썼다 하면 시장을 망쳐놓는다.

물가정책은 나중에는 어찌되는 무작정 동결이다.

먹혀들 것 같지 않으면 세무조사다.

중소기업 지원책은 한결같이 은행 목비틀기로 채워진다.

비율로는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지원금액을 할당해 준다.

은행에 예금하는 고객의 권익이나 금융의 자율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관치시대이니 거부라는 건 생각도 못한다.

대기업정책이야 얘깃거리도 안된다.

가장 공정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하게도 정부를 비판한 ''괘씸한''
기업부터 조사한다.

재벌을 다스려야 할 필요가 생기면 초법적 조치도 망설이지 않는다.

이러니 정책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진다.

일관성이 지켜질리 없다.

언제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모르니 불안하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요즈음 독바가지를 쓰고 있는 정경유착도 그래서 생긴
것이라는데 달리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자주 ''뵙고'' 낯도장을 찍어 두어야 산다.

''성의''도 필요하다.

정책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연이 흥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연두 국정연설에서 ''역사 바로세우기''를 강조했다.

21세기에 일류국가가 되는 것도 이 일을 해내느냐 못해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힘을 주었다.

물론이다.

하지만 경제를 먼저 바로잡아야 역사가 바로 세워진다.

아무리 부정부패방지 ''특별법''을 만들어도, 기업인과 정치인을 죄다
잡아들여도, 정치논리가 경제를 장악하는 한 역사는 바로 가지 못한다.

''경제 바로세우기''는 다름 아니다.

경제가 경제논리에 의해 움직이게 하면 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작동되도록 하는 일이다.

세금은 조세논리, 물가는 가격원리, 진입과 탈퇴는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
되도록 하면 그뿐이다.

그리고 정부는 시장이 실패했을때 개입하면 된다.

잘 돌아가고 있는 시장에 정치를 끼워 넣어 망쳐놓고, 다시 손을 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어서야 역사가 바로 설리 없다.

경제논리를 사수하겠다고 맹세를 해도 희망사항 쯤으로 그치고 마는게
맥없는 경제부처의 위상이다.

아침까지 안된다고 우기다가도 여의도에만 갔다 오면 그걸로 끝인 판에
''정치논리를 너무 나무라지 말라''는 부총리가 걱정스러운 것은 결코 기우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