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담한지도 15년이 지났다.

요즘들어 "대학생들은 오해 어떤 문제들을 갖고 오나요?"

"학생들이 그렇게 상담을 많이 받으러 와요?" 등의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때마다 그동안 상담했던 많은 학생들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들의 호소와 아픔을 이들에게 펼쳐 보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보통 대학 시절을 낭만의 시기로 보지만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대학
1학년에게는 급격한 생활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며 그만큼
고민과 고통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것은 정말 어청난 생활 변화인
것이다.

일과표에 따라 움직이던 의존의 상태에서 모든 것을 일일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자유의 상태로 옮겨가지 때문이다.

학교와 집 또는 독서실 사이의 시계추와 같은 생활에서 새로운 친구와의
사귐, 이성과의 만남, 서클 활동을 통한 대인관계등 갑자기 폭이 넓어진
생활로 변한다.

이로인한 긴장감이 커지는데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야 하는 과제까지 겹치게 된다.

지금 신문 방송에서는 입시 뉴스로 한창이지만 곧 당락이 결정될
것이고 합격자들은 달리기에서 마지막 골인을한 느낌으로 입학을 하게될
것이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첫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2~3주 전인 4월 중순이
되면 상담소를 찾는 신입생들이 많아진다.

입학 수 정신없이 보대다가 중간고사라는 걸림돌에 부딪치면서 혼돈과
회의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때가 바로 용돈문제, 늦은 귀가 과음 등으로 부모님과의 충돌이
최고조에 달하는 때이고 또 나름대로 대학에 와서 인간 변화를 시도했으나
성과 없음에 실망하는 때이다.

그동안 사귀었던 이성 친구와의 첫결별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이런 생활을 하려고 대학에 왔단 말인가?"

"나의 장래는?"

차라리 목표를 향해 앞뒤 안보고 열심히 달렸던 고3시절이 그립다고
한숨짓는 학생들도 있다.

지난 3년간 불충분했던 수면을 보충이나 하려는듯이 앉기만 하면 잠은
쏟아지고 자지않더라도 멍하게 그저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정신을 모아 집중한다는 것은 아주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진리 탐구니, 학문의 추구니, 대학의 국제화니 다 멋진 소리인데 당장
교수의 강의가 의미없어 보이고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선배들이 말하는 대학생활의 낭만이란 무엇인가?공부도 중요하지만
원만한 인간관계가 더 소중하다는 충고를 받아들여 동문선배, 써클선배,
학과 선배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술 얻어먹다가 위만 버린다.

속사정도 모르는 부모님들은 장학금을 기대하고 남보다 먼저 고시공부,
취직준비를 시작하라고 성화다.

그래서 공부한다고 새벽 6시에 나와 자정에 들어가는 하숙생이 되어
버린다.

게중에는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 수없이 끝나는 즉시 집으로
달려가서 외로움과 자책으로 시간보내는 학생들도 있다.

이러다가 선배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거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하소연을 해보지만 그것도 별 수가 없다.

많은 대학 신입생들은 고달프고 외롭고 답답하다.

혼돈 속에서 산다.

지난 3년간 공부에만 매달린 탓에 정비돼 버린 듯한 감정적 사회적
성장을 대학 첫1년동안 한꺼번에 경험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이런 1학년 학생들이 상담소에 많이 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학생들과 몇시간, 또는 한학기 동안, 때로는 헤를 넘겨가며 상담하면서
차츰 자신을 발견하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모습을 볼때가 가장 행복하다.

고통을 딛고 새로운 출구를 찾아낸 학생들은 예전보다 훨씬 성수된
자세로 세상을 대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선택과 절제된 삶의 가치를 깨닫고 가능성 있는
미래를 향해 달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