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0대후반의 패기 만만하고 매스컴 잘타는 하시모토 류타로 자민당
당수가 의회에서 새 총리로 선출돼 연립 2차내각이 발족됐다.

자민 사회 사키가케 여3당은 소수당 총리라는 기형은 끝낸 셈이나 새내각의
단명과 정치파란의 고조는 어차피 불가피해졌다.

무라야마의 의외로 긴 1년반 집권을 연립내 다수당으로 대체시킨 것은
예정된 일이지만 보다 젊고 야심찬 신진당 오자와의 거센 도전이 벌써
집요해 길어야 6개월 전후면 해산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근본에 있어 자민 38년집권 말기이후의 정치불안, 거품 꺼진후의 경제침체,
중국의 급부상등 냉전해체후 세계판도의 재편 상황에서 국제정치 역할증대
라는 보수우익의 내재 여망이 일본정치의 새동력으로 표면화하는 전환점이다.

특히 지난해의 종전 50주년을 계기로 과거청산에 단을 내리려던 사회당
총리의 결의를 우익의 반발이 압도했고, 총리대신에 그런 여망을 업고
일어선 야심가가 다름아닌 하시모토-오자와인 것이다.

이 양인은 보수주류인 다나카(전중각영) 다케시타(죽하등)아래서 총리감
으로 오래 훈련되고 특히 "노 할수 없는 일본"의 기개 함양에 매진했다.

하시모토가 통산상으로 미국 캔터대표와 차협상하는 태도가 외국에서
"사무라이"로 희화화된 전년의 일은 매우 상징이다.

신임 한국총리와 37년생 동갑인 일총리는 교육을 주로 전후에 받고 장성한
개방-민주형이면서도 전전 기억을 충분히 간직할 연배에다 출신배경이 겹쳐
우국적-복고적 열정이 동시에 몸에 밴듯 보인다.

이점은 일본 최극우단체인 전쟁유족회의 회장을 최근까지 맡아온 한가지
사실로도 입증된다.

그러나 그에대한 인물평의 특색인 TV 잘받는(Telegenic) 외모에서 우리는
어느쪽이냐 하면 실망보다 희망을 더 느낀다.

그런 특성이란 개방적 여론 존중적 성격으로 환언될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나이도 젊어 이번엔 단명 총리가 될지 몰라도 일본에 오래 영향을 줄
인물의 면모를 지우기 힘들다.

일본은 과거 1세기 반동안 유색인종으로 유일하게 산업화에 성공, 비록
태평양전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전후 제2 경제대국이 됐다.

60년대이후에는 한국 대만등 신흥공업국군(NICs)과 중국 아세안의 경제
개발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온 사실 또한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그런 성취가 과거 그들이 외쳤듯이 탈아입구가 아니라 아시아라는
존재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 잘 알줄 믿는다.

향후의 발전이나 위상강화 역시 강한 아시아가 있음으로써 가능함 또한
인지할 것이다.

특히 총명하고 개방적인 일본정계 신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나 아시아인
의 진정한 공동번영을 위해서 그 나라가 지향할 행로가 무엇인가를 너무
잘 숙지하리라 우리는 믿는다.

적어도 한국인들은 일정치인들이 과거 관련 망언을 되뇌는 대신, 미래
공통과제를 논의하려는 자세전환으로 새 일본의 싹이 틈을 잘 알며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