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경 < 단국대교수/무역학 >

작년 한해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수반한 역사적인
시기였다고 할수 있다.

국내의 경우 비자금정국으로 정치.경제계가 충격에 휩싸였으며 경기의
양극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되었다.

하루 약40개의 중소기업이 부도가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소기업사장의 자살이 수시로 신문에 보도되어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소비심리가 위축됨에 따라 동내 구멍가게나 식당들에서도
한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한편 국제적으로는 1월1일부터 출범된 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기존의
우루과이 라운드(UR)이외에도 환경협상인 그린라운드(GR)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기도 하였다.

모든 기업경영은 이제 환경문제로 통하게 되었으며 국제무역에 있어서도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통상정책이란 무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과거에는 들어본적도 없는 새로운 용어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노동협상(블루라운드:BR), 기술협상(테크놀로지:CR)등이다.

뿐만아니라 디자인라운드(DR)와 부패라운드까지 등장하여 국제무역전쟁은
이제 최후의 일전장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1990년대 중반의 세계경제환경은 한편으로는 WTO를 통하여 과거에 관세.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가지지 못하였던 강력한 권한과 분쟁조정
기능을 가지게 되어 새로운 다자간 협력질서의 구축이 용이하여졌다.

그러나 유럽연합(EU)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그리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APEC)의 유대강화등으로 지역주의의 움직임이 한층 강화되어
세계는 다자주의와 지역주의가 나란히 공존하는 혼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사여구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자국의 이기주의 또는 경제패권주의를
덮어가리기 위해 지역적 개방주의(open ragionalism)라는 그럴듯한 용어를
만들어 내기까지 하였다.

아뭏든 최근의 국제무역전쟁은 모든 국가들이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변모하고 있으며 국가간에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존재하지 않는 경제적
이해관계만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96년도에 들어와서도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강화될
움직임이 사방에서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올해 1월5일 교역상대국들과 맺은 무역협정의 이행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별도의 기구를 무역대표부(USTR)에 설치하겠다고 하였다.

별도기구의 설치목적은 우리나라를 포함안 신흥급성장시장(BEMS)에 대한
시장개방압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미키 캔터 USTR대표는 워싱턴의 국가정책센터 연설에서 주요교역 상대국들
이 미국과 맺은 통상협정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여부를 전담감시하고 필요할
경우 강제집행할 능력을 갖춘 특별기구를 설치한다고 발표하였다.

교역상대국에 대한 미국의 무차별 통상압력이 한층 강화되는 가운데 EU도
이에 질세라 일권불사의 태세를 갖추어 가고 있다.

작년연말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열린 EU정상회담에서 단일통화의 명칭을
"유로(EURO)"로 확정하였는데 이것은 EU국가들의 결속을 통한 대외 경쟁력
강화로 직접 이어질수 있다.

EU국가들은 자신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유럽요새화(Europe
Fortress)를 하기 시작해 구소련의 붕괴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이나 EU이외에도 일본 중국 아세안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도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하등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우기 중국의 경우 사생결단식의 공업화정책에다 군비확장까지 행하고
있어 일본을 자극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금년도 일본의 방위예산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다.

또한 러시아는 지리멸렬한 국내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계 제2위의
군사대국인것은 틀림 없기 때문에 동북아세아의 패권을 놓고 중국 일본
러시아가 각축을 벌리고 있으며 기득권을 유지보호하려는 미국까지 합세하여
혼전의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우리 한반도는 주변의 이리들에게 둘러쌓인 토끼의 상황이 되어버려
다시 19세기말 또는 20세기초로 돌아간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신흥급성장국가인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주변
강대국들의 이기심과 중국및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통한 동북아 패권주의의
가속화속에서 1996년도 한해는 격랑의 시기일 수도 있다.

이러한 국내 외적으로 급변하는 환경하에서 우리나라가 5000년역사를 계속
유지하면서 생존 번영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책방향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외국 특히 미국의 무분별한 통상압력에 과감히 대처하여야만 한다.

WT정신에 어긋나는 슈퍼301조등의 국내법적수단으로 교역상대국을 몰아치는
미국의 자세도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이같은 미국측의 위협적 통상압력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우리나라의 통상교섭자세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미국측에서 볼때 한국은 밀어붙이기만 하면 물러나는 국가로 인식되어
버린 것도 큰 문제이다.

둘째, 작년 대미자동차 협상때의 경우처럼 주도권을 잡기위한 해당부처간의
불협화음이 미국측에 알려지고 전화도청등을 통한 우리나라의 통상협상전력
이 미국측에 사전 누설되는 식의 정보관리및 협상태도는 반성되어야 한다.

세째, 12.12사태및 5.18진상규명,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의 부정부패 척결및
사정은 국가백년대계를 위하여 필요하나 이것이 정략적 차원에서 이용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세계 모든 나라들이 2000년대에 살아남기 위하여 총력을 경주하며
공업화와 경제의 내실을 기하고 있는 이때 비생산적인 정치싸움만 계속
한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치욕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