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곤 < 부산발전연구원 원장 >

[[[ 약력 ]]]

<>1932년 부산출생
<>1951년 경남상고 졸업
<>1955년 부산대 경제학과 졸업
<>1957년 동대학원 경제학과 수료
<>1973년 동대학교 경제학 박사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역임
<>부산대 상과대학교수 역임
<>다산경제학상 수상
<>부산발전연구원장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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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1세기가 눈앞에 다가 왔다.

5년만 있으면 새로운 세기가 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해 놓고 있는가.

전세계의 온갖 나라가 21세기를 대비하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에 정치파동으로 새로운 세기에 대한 비전 제시나 공감대
형성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올해에는 새 백년의 대계를 세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세계경제는 냉전 해소 이후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 가고 있다.

한편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진전되어 세계의 시장이 개방되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하는 나라들이 경제적인 협력체를 형성하여 시장의
내부화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1985년에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이후부터 20세기말의 대변동이 시작되었다.

독일의 통일, 소련의 붕괴와 공산당 해체, EC의 경제적 통합, 리우 환경
국제회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WTO의 출범, 그리고 사회개발 정상회담
등이 연이어 일어나 세계질서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21세기의 세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하는 추세를 읽을 수 있다.

크게 세 가지 중요한 경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경제협력체 구성의 경향이다.

최초로 93년에 출발한 유럽연합(EC EU)은 장차 25개 정도의 나라를
가입시켜 인구 약4억 규모의 경제통합체를 이루려 하고 있다.

94년에 출범한 NAFTA는 역내 관세의 점진적 인하를 꾀하면서 협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에는 아.태경제각료회의(APEC)가 있다.

둘째로 21세기에 있어서는 환경보호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환경의 오염은 비단 한 나라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환경문제를 배려하지 않는 경제활동 기업경영은 있을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로 사회개발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경제발전 뿐만 아니라 사회개발도 중요한 관심사로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소외계층을 보호하여 모두가 다 함께 살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이러한 세 가지 경향은 우리가 21세기를 열어 가기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될 과제라 할수 있다.

그 준비를 위한 몇가지 기본방향을 생각해 보자.

우선 지역협력은 앞으로 21세기로 가면 더욱 강화되고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개방되는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투자를 확대해 가면서 이웃하는
지역과의 협력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유럽이나 북미지역이 지역 이기주의로 나아가 어려움이
가중될 경우에는 장차 동아시아도 독자적인 협력체를 구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책은 "공해 발생원 책임의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일이다.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여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을 배출 이후에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성분이 복잡하여 올바른 처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공해는 그것을 발생시키는 원천에서 책임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해방지의 기술은 무상으로 기술이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회개발에 대한 대응은 경제발전을 촉진하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발전 없는 사회개발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부상조하고 공생하는 전통문화의
바탕 위에서 사회개발을 꾀하고 복지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부작용과 문제점이 많아 오늘날 복지정책은 많이 후퇴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공동체 의식과 직결된 사회개발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질서 개편과 관련하여 지난해에 두 가지의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북미지역과 유럽의 접근이고,다른 하나는 아세안의 새로운 회원국
으로 베트남이 가입했다는 사실이다.

20세기를 주름잡아 온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적 성취도를
보이고 있는 동아시아와 더불어 아.태경제각료회의를 구성, 이를 주도해
왔다.

그런데 유럽이 홀로서기를 하자 NAFTA를 출범시켰다.

유럽의 경제 통합체와 NAFTA 국가들은 경합하는 관계로 가는듯 하더니
연대하는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세계 전략은 발전하는 동아시아의 포용, 중남미의 나라들을 엮어
거대한 남북미주대륙의 단일 시장화를 꾀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럽과의 유대는 한마디로 21세기에 있어서의 지속적인 주도권
확보전략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발전하는 동아시아에 있으면서 독자적인 협력체를 구성하고 있는
아세안이 그 경제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우선 회원국이 95년7월의 베트남 가입으로 7개국이 되었다.

95년말의 아세안 방콕 정상선언에서 보면 앞으로 97년에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가입시키고, 2000년 이전에 미얀마도 가입시킨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인구가 5억이나 되는 거대한 단일 시장이 형성된다.

그러나 후발 참여국인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의 경제력이 아직 미약하고
농산물 개방이 어렵다는 등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발전은 그 경제발전의 단계, 경제력의 규모, 기술수준
등으로 보아 아직은 한국 중국 일본 등이 주도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에 커다란 정치파동을 겪었고 그 소용돌이는 아직도
가시지않고 있는 듯하다.

우리 나라는 이제 1인당 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이하였다.

따라서 외국에서는 한국이 이미 선진국으로 진입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안으로 국내 사정을 보면 도무지 선진적인 사회질서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와 더불어 균형적으로 성숙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로 우리 사회의 성숙과 안정이다.

우리 나라 경제의 선진화도 지금부터가 문제일 것이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부상하는 일도 어렵지만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훨씬 더 어렵다고 말한다.

그것은 선진국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지표 개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와 더불어 사회가 성숙하고, 정치가 선진화되며, 건전한 정신문화가
정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는 경제기반을 더 공고하게 구축하여 21세기로 도약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 속히 사회를 안정시키고 새로운 역사 창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정치가 흔들리고 있을 때에는
경제도 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전통문화와 외래제도의 융화이다.

우리 나라는 줄곧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유지해 왔다.

너무나 오랫동안 집권체제에 젖어 왔기 때문에 전통문화와 외래문명의
제도 사이에는 아직도 갈등이 남아 있다.

예컨대 정치분야를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사람들의 정서와
민주주의 제도가 아직 잘 융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편으로 공정의 실현을 강하게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유교문화의 선공후사, 공직자의 청렴결백이라는 도덕관을 가지면서도
오랜 집권적 질서로 인하여 집권자는 권력을 휘두르고 피지배자는 권력을
두렵게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한편으로 부정이나 부패를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런 일이 자꾸만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조직과 제도의 운영은 철저하게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하되 그것과 사적인 인간관계를 분별하도록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의 가족 집단주의적 문화와 복지정책 문제이다.

우리는 가족이나 이웃 사이에 상부상조하고 어렵더라도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문화를 지녀왔다.

그런데 이제 경제가 발전하자 그에 따른 상대소득의 격차, 사회적 박탈감등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의 분배나 사회계층구조에서 평등을 요구하는
강도가 다른 나라 보다 훨씬 강하다.

이제 우리 나라는 복지사회를 건설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그런데 이 복지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구미 사회의 모델을 그냥 모방하여
도입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전통문화, 국민정서와 맞는 한국적인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 기본 방향은 원칙적으로 자기 부모나 형제는 자기 가족이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부 제도적 장치는 되어 있으나 앞으로 가족주의의 복지 보장에
대해서 보다 많은 유인이 주어져야 할것이고 정부의 보호는 무연고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로 전통위에 서 있는 기업문화의 창달이다.

원래 우리에게는 개별적 가족과 그 가족이 모인 것으로서의 국가라는
조직개념만 있고 기업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런데 기업개념이 도입되자 우리는 이것을 가족원리에 의해서 파악하게
되었다.

따라서 원래 기능공동체인 기업이 우리 나라에서는 동시에 운명공동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업문화도 전통 위에서 창달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우선 보수체계는 가급적 상하간의 격차가 작은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원리에 의해서 다함께 살기 위해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 가진 사람이
다소 손해를 보는 질서가 국민정서에 맞는다.

그리고 기업에서 종업원 복지에 힘을 쏟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것은 기업의 발전과 복지정책의 분산적 시행의 길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은 바뀌고 있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구미에서 아시아로 문명의 중심, 경제의 주도력이
서서히 옮겨오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우리는 지금 아시아의 시대가 열리는 새벽을 맞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창조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문화이다.

우리는 뛰어난 문화를 지녔기 때문에 지난 반세기 동안에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세계 무대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새 반세기가 정말 중요하다.

세계사의 흐름을 타고 자랑할 수 있는 미래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