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4년 남겨둔 올해 벽두에서 국내 최대의 관심사를 정치 정상화,
경제의 연착륙, 남북관계의 호전 여부로 꼽는다면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경험상 그 가운데서도 제현상을 지배하는 상부구조는 역시 정치이기
때문에 4월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르느냐 여부는 나라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 하겠다.

정치가 상부구조라는 명제는 특히 최근 몇달의 경험에서 온 국민이
실감했을 터이나 총선을 어떻게 치르는 것이 잘 치르는 것인가에 대해선
입장에 따라 대답이 상반되게 마련이다.

우선 각 정파야말로 의석확보 이외는 눈에 뵈는게 없으니 더이상 상대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총체적 공동체인 국민의 입장에 선다면 이번 총선이 제몫을
다함에 있어 공명선거를 위한 선행조건의 점검, 공명선거의 기필 관철,
국회다운 새 국회의 구성 운영등 몇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불행히 그런 당위성에 비춰 볼때 돌아가는 현실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선 각 정당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헌재의 위헌결정으로 새삼 촉발된
선거구 조정에서의 유리한 흥정과 당선 가능성 위주의 출마 후보자
영입이다.

먼저 위헌 제소가 있었음에도 결정이 내리고야 비로소 선거구 조정을
서두르는 일 자체가 이미 졸속을 예정한 것이나 진배없다.

이속에서 잘해봐야 임시변통 이상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선거권 등가라는 평등선거의 대원칙아래 무려 5.8대1 넘게 격차가
벌어지도록 방치한 소행은 여-야 불문, 엄중 지탄받아 마땅하다.

요행을 바란 무책임 아니면 헌재의 존재를 무시한 반시대적 정치감각중
하나다.

만일 유권국민과 헌법을 존중한다면 너무 큰 격차를 이번에 최대 축소,
기본적으로는 1대1을 지향한다는 정신을 바탕에 깔아야지 오직 당리하나
때문에 어거지를 쓴다면 그것 하나로 이미 결격이란 점을 국민은 잘 안다.

성질상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당선 가능성이란 비윤리적 인선기준의 맹종
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이런 발상이야 말로 한국 대의정치 고향
상실의 영원한 근인이다.

여-야 불문, 이념까진 아니더라도 일관된 신봉원칙마저 내세우는 정당이
없는 현실, 나아가 목표도 지향도 없이 눈앞의 이해 하나로 이합집산하는
이나라 정치인의 반규율적 수단방법 추구 고질 또한 여기에 원인을 두고
있다.

특히 누구보다도 지방선거 참패에 절치부심하는 개혁표방 여당이 이 신화에
사로잡힌 듯 엊그제까지 지탄받던 인물을 모시듯 하는 자기모순은 승인보다
패인이 되기 십상임을 외면해도 되는가.

또한 경쟁력강화-국민복지향상-선진사회진입을 향도해야할 정치가 그 궤도
를 벗어나 오히려 경제와 사회에 부담이 되는 현실 역시
필요하면 창당이념이건,당명이건,간판 인물이건 날려도 그만인 타락정치에
원인하고 있다.

진정한 공명선거로 인재가 뽑혀 새 국회를 구성하지 않으면 대통령 전체적,
당수 전횡적 추세는 결코 막지 못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