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년 원단, 대망의 21세기가 꼭 5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재계의 몸놀림이
부산해졌다.

눈앞의 현실로 닥치고 있는 정보화 개방화의 물결에 대응키 위해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재계는 새해를 맞아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새출발 새경영"에 대해 여느
"새해"와는 달리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집중"과 "통솔" "규모의 경제"가 신통력을 발휘했던 시대에서 "분권"과
"자율" "경제 효율"이 중시되는 시대로의 전환기를 맞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치러야 했던 비자금 홍역등 다사다난했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전환기적 모티브로 선용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신경영이념및 윤리강령 선포(현대) 소그룹별 분권.자율경영을 통한
"신경영" 가속화(삼성), 공정거래문화 정착을 통한 정도경영 추구(LG),
경영합리화 방안(대우) 등 세밑을 앞둔 시점에서 주요 대기업그룹들이
잇달아 내놓았던 변신 전략은 결코 일과성 전시행사일 수 없다는 얘기다.

재계의 변신 작업은 <>경영구조 개편 <>전문경영인 권한 강화 <>중소기업
지원 확대 <>세계화경영 강화 <>환경친화 경영 등 여러 갈래로 나뉜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바탕을 이루는 공통 분모는 "열린 경영"과 "투명한 경영"으로
요약된다.

집중에서 분권, 규모에서 효율로의 "경영권력 이동"과 무관하지 않은
흐름이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물론 21세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다.

현대그룹이 구랍 11일 선포한 "경영이념과 기업 윤리강령"은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현대의 새 경영이념은 <>미래사회를 선도할 세계 일등기업 지향 <>인간
존중 이념으로 사원의 자기실현 지원 <>창의와 세계적 기술 개척 <>고객
최우선 정신으로 고객만족 극대화 <>풍요로운 국가 건설과 인류사회 발전
공헌 등 5가지.

또 기업윤리 실천강령에서는 <>정경유착의 단절과 모든 부조리 배척
<>전문경영인의 자율경영체제 정착 <>공정한 거래와 경쟁을 통한 자유시장
경제 질서 준수 <>중소기업 지원 확대와 상호발전 도모 <>환경친화기업
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이행 <>고객에게 신뢰받는 기업상 정립 <>기업의
사회적 책임 완수 <>임직원의 올바른 윤리관 확립과 솔선 등을 다짐하고
있다.

정세영현대그룹 회장은 경영이념 선포에 즈음한 인사말을 통해 "새로운
마음가짐과 업무자세로 정직하고 신용있는 경영을 추구할 때 21세기를
준비하는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해 지향점이 "21세기 경쟁력
강화 기반 조성"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대우그룹이 지난해 11월말 소유.경영의 분리를 통한 전문경영인체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5개 분야 경영합리화 방안"을 발표한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대우가 내놓은 5개 합리화방안은 <>김우중회장 지분의 단계적 정리를
통한 소유.경영 완전 분리 <>세대교체 인사를 통한 전문경영인체제 강화
<>세계경영 지속 추진 <>중소기업 지원 강화 <>사회봉사활동 확대 등으로
이뤄져 있다.

한마디로 "시대 흐름에 맞춰 경영의 새틀을 짜겠다"는 의지의 표시로
받아들여진다.

현대와 대우가 총론적인 경영혁신의 준거를 마련했다면 삼성 LG 등은 각론
차원의 "행동"을 시작한 단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작년말 새해 그룹경영계획을 확정하기 위한 각종
회의에 일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전적으로 전문경영인들에게 사업계획 수립과 집행을 일임하겠다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뿐만 아니라 범그룹차원의 회의도 갖지 않았다.

대신 전자 기계 화학 등 소그룹별로 회의를 열었다.

전문경영인이 주도하는 소그룹 자율경영체제를 굳혀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삼성은 또 작년말까지 한정 실시키로 했던 중소 협력업체들에 대한 납품
대금 전액 현금결제 시스템을 올해에도 연장 적용키로 했다.

"중소기업과의 공존공영"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LG그룹은 작년 2월 구본무회장 취임이후 새 경영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정도경영"을 하나 하나씩 각론화해나가고 있다.

그룹본부와 각 계열사에 공정거래문화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하도급
<>구매 등 각종 대외거래에서의 불공정.부당한 관행을 일소하겠다는 게
목표다.

LG는 이어 국내 대기업으로는 처음 납품협력업체를 공개 모집하는
"대혁명"을 단행했다.

이제까지 대부분 대기업들이 주주 임직원등의 "연고"를 따져 거래를 터온
관행에 비추어보면 "혁명"이란 이름을 붙여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 조치는 기존의 터부를 깨기 위한 일련의 작업을 시작하는 첫
삽질일 뿐이었다.

작년 11월 28일 주주와 임직원들의 부당 내부거래를 혁파하기 위한 2단계
조치를 내놓은 것.

주주와 현직 부장이상 전임직원의 직계 존비속과 형제자매.친인척.
추천인이 운영하는 업체를 등록시켜 납품등 거래관련 부조리를 척결한다는
내용이었다.

선경 쌍용 한진 동아 등 강력한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해 온 다른 주요
대기업그룹들도 구습탈피를 겨냥한 각종 몸놀림에 바쁘다.

그룹 계열사들을 계열(소그룹)로 나눠 전문경영인들의 자율경영폭을 넓히고
그룹기획조정실을 축소한다는 게 공통적인 방향이다.

재계는 올해 <>사업구조 재구축 <>발탁인사 <>연봉제 도입 등 "경영효율
극대화"를 키워드로 하는 변신 노력을 더욱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분권.자율과 이를 바탕으로 한 투명.공정 경영을 해나가는 것은 단지
대기업그룹의 대외이미지 개선같은 전시효과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방향으로 자기혁신을 꾀하지 않고는 정보화시대에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기업으로선 이같은 변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다.

분명한 건 재계의 자기혁신 노력이 당분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총수의 세대교체를 단행한 LG그룹에 이어 이달 29일에는
코오롱그룹이 40대초반의 젊은 총수로 "선장"을 바꾸기로 하는등 세대교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또 주요 그룹들이 40~50대로 사장단과 핵심 임원들을 교체하는등 "젊은
경영진" 구축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나아가 총수 1인이 지배하는 기존의 권위주의적.권한집중적 경영체질을
탈피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도 착착 마련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작업은 "혁신"의 기반조성일 뿐 "성과물"로 볼 수는
없다.

이제부터 재계가 해야 할 일은 구체적인 혁신의 성과물을 내는 것이다.

인터넷 멀티미디어 WTO(세계무역기구) 시장개방 정보통신혁명 등 재계에
제시되고 있는 "경영 화두"들은 올해 더욱 실감나게 기업들의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변신을 재촉할 게 틀림없다.

< 이학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