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9시 40분.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는 올 한해를
마무리짓는 LG전자의 "95년도 종무식"이 열렸다.

업계 종무식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이날 행사가 눈길을 모은 것은
"첫 종무식"이란 의미때문 만은 아니었다.

LG그룹의 간판 전문경영인이자 국내 전자업계의 산 증인인 이헌조회장
(63)이 일선 은퇴를 선언하는 고별행사였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해가 바뀌는 내달 초순 LG전자 회장직에서 물러나 그룹
연수원인 LG인화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LG인화원은 10만 임직원의 각종 교육을 총괄하는 "LG대학교"다.

경영인으로는 드물게 철학과(서울대)출신으로 "경영과 동양사상의
접목"을 강조해 "학자 기업인"으로 불렸던 그답게 기업경영인에서
"훈장선생님"으로 변신하는 셈이다.

때문에 40여분동안 진행된 이날 종무식의 하일라이트는 이회장의
"말씀"이었다.

30여분동안 올 한햇동안 회사발전에 각종 기여를 한 유공임직원들을
일일이 표창.격려한 뒤 마이크앞에 선 그는 일순 눈을 지긋이 감았다.

지난 5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에 몸을 담은뒤 만 39년을 오로지
"LG맨"으로 전력투구해온 지난 역정이 활동사진처럼 스쳐지나가는듯
한 표정이었다.

그가 LG전자(구 금성사)대표이사로 취임한 건 지난 89년.

LG전자의 최고사령탑으로만 꼬박 7년을 근무했다.

"내게 있어 LG전자는 영업사원 1호라는 명예가 남아있는 곳이고
사장으로 부임한 뒤에는 마지막으로 봉사할 회사라는 신념으로 일해온,
정이 많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이회장은 "지난 7년간 계속됐던 혁신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노와 경이 하나가 돼 이룬 성공의 드라마였다"며 "나는 지난날의
영광을 뒤로 하고 정들었던 LG전자를 떠나지만 멀리서나마 깊은 애정을
갖고 21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회사를 언제까지고 성원할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이회장은 LG전자 사령탑을 맡은 뒤 연배가 비슷한 강진구삼성전자
회장과 국내 가전업계의 쌍벽을 이루며 "재래 가전에서 멀티미디어로의
대변천"을 현장에서 일궈온 장본인.

그의 부친은 락희화학 부사장을 지낸 이연두씨.

대학 재학시절 공장을 찾아가면 구인회그룹창업주는 "헌조 왔는가.

자네 이제 공과대학으로 전과하지"하며 의미있는 농담을 했고, 청년
이헌조는 이에 대해 "전과까지 할 것 있습니까.

럭키가 커지면 앞으로 철학과 출신도 필요할 겁니다"라고 응수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이회장은 청년시절의 장담대로 LG에 입사한 뒤 동양사상이 짙게
밴 특유의 경영철학을 자양분삼아 LG그룹은 물론 한국 기업계에 굵은
한획을 긋는 전문경영인으로 우뚝 자리했다.

"중용에 나오는 "신기독"처럼 남이 안보는데서도 철저한 서비스정신을
유지하고, 대학의 "격물치지"에 맞게 현장확인주의를 지킨다"던 그는
이날 종무사의 대미를 이렇게 장식했다.

"사실은 수년전부터 후진 양성을 위해 인화원원장 자리를 희망해왔다.

이제 그 꿈이 이뤄졌다.

그곳에서 그룹의 제2 혁신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데 여생을 바치겠다"

이회장은 그러나 인화원 원장외에 LG전자 회장으로서의 "마지막
작품"으로 인수한 미국 제니스사의 경영이사회 의장직은 유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룹 최고경영의사결정 기구인 정책위원회 위원으로도 남아 그룹의
굵직한 사업에 대한 자문에 응하게 된다.

여전히 바쁜 "LG대학 총장"이 될 것 같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