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지원책은 잇따라 발표되고 기회있을 때마다 정책당국은 중소기업
을 살리겠다고 다짐해왔다.

신임 나웅배 부총리겸 재경원장관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왜 중소기업 지원대책이 자주 나오고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다짐
하는가.

그것은 중소기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어려움, 더욱이 자금난은 어제 오늘 새삼스럽게 제기된 문제는
아니지만 올해엔 부도업체가 더많이 늘어났다.

비자금파문으로 사채시장마저 얼어붙어 자금융통이 어렵게 된 것도 중소
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는 요인이다.

중소기협 중앙회가 전국 1,2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금난실태
조사"결과는 새삼스러운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중소기업이 거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때 77.8%가 "꺾기"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받는 중소기업은 예.적금을 들거나 CD(양도성 예금증서)를 매입하는등
구속성 예금에 들것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꺾기"가 문제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고 그때마다 고위 관료들은
금융기관의 "꺾기"관행을 없애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도 "꺾기"는 여전히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키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번 조사대상 기업들은 운전자금을 대출받는 경우 일반적으로 융자금과
동일한 금액의 3년짜리 정기적금을 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연간 납입액이 대출금의 2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은행감독원의 "구속성 예금지도 기준"을 금융기관이 지키지 않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지도기준은 있으나마나다.

중소기업이 대출받을때 신용대출은 6.1%,신용보증부 대출은 16.2%에 그치고
있고 68.6%는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에 자금이 남아 돌아도 중소기업 대출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용대출을 아무리 강조해도 금융기관에서는 담보위주 대출관행을 해소
하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한편 중소기업이 물품을 생산 판매하고 받은 상업어음은 금융기관에서
제대로 할인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담보위주 대출관행을 신용대출로,어음결제 관행을 현금결제 관행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

오래된 관행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일 수 없다.

장기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면서 우선 신용보증기관의 보증
한도를 확대하고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체의 보증을 서주는 방안등이 마련
되어야 한다.

현금지급 관행이 정착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선 시급한 일은
상업어음 할인을 활성화하는 실질적인 제도개선이다.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렵고, 물품을 만들어 판 대금을 제때에 받지 못하거나
떼이는 상황을 그대로 둔 채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책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