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할수 없이 다른 베개를 구하러 바깥방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늙은 시녀의 것으로 보이는 꾀죄죄한 베개 하나만 눈에 띌
뿐이었다.

보옥이 빈손으로 돌아와 쓸만한 베개가 없다고 투덜거리자 대옥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보옥 오빠는 내게 붙은 천마성 인가봐요. 자, 이 베개를 베세요"

천마성은 운명처럼 들러붙어 귀찮게 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보옥이 기분이 좋아져 대옥의 베개를 베고 누우며 대옥이 벨 자리를
조금 남겨놓았다.

그러나 대옥은 침대에서 내려와 어디서 새 베개를 하나 가지고 와서
그것을 베고 누웠다.

그리고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보옥은 대옥의 몸에서 풍겨오는 그윽한 향기에 취해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이 향기가 어디서 풍기는 거지?" 하며 슬그머니 코를
대옥의 소매 속으로 밀어넣었다.

"아이, 여기 소매 속에는 향병도 없고 향구나 향대도 없어오"

대옥이 가볍게 소매를 손으로 떨쳐내리며 보옥으로 하여금 냄새를 맞지
못하게 하였다.

향병은 납작하게 빚은 향이요, 향구는 둥글게 빚은 향, 그리고 향대는
주머니에 든 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

좀 무안해진 보옥이 화제를 딴데로 돌리려 하였다.

"무슨 이야기인데요? 해줘요"

대옥이 손수건을 얼굴에서 들어올려 보옥을 한번 쳐다보고 나서 다시
손수건을 얼굴 위에 놓았다.

"양주에 대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위에 임자동이라는 굴이 있거든"

그 말을 듣고 대옥은 손수건 밑에서 비씩 웃었다.

양주는 대옥의 고향이고, 대산이니 임자동이니 하는 것은 임대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지어낸 말들이 분명하였다.

"그 임자동 굴 속에 한 무리의 쥐떼들이 살고 있었거든. 그 쥐들이
어느 부잣집의 곡물과 과일들을 훔쳐오기로 하고 회의를 하였지.

쌀을 훔치러 갈 자, 콩을 훔치러 갈 자, 토란을 훔치러 갈 자 등등
역할을 맡았지.

그런데 토란을 훔치러가는 일을 맡겠다고 나선 쥐가 제일 작고 약했어.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몸으로 토란을 훔치러 갈 수 없다고 다른 쥐들이
반대를 하였지.

그러자 그 쥐는 자기는 비록 몸이 작고 약하지만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둔갑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지"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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