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공단 1970년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불모의 평야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산업전사들, 공장기숙사에서, 농가 셋방에서 시작한
근로자들이 이제는 안정되고 화목한 기반을 구축하며 엄청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단이라는 특수한 생활환경속에서 문화예술이란 결코 사치스런
감성이 아닌 내 생활의 일부로 만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과 노력이 필요
했다.

1987년4월, 8명의 공단근로자들의 설레임으로 시작한 "구미 영상회"발족
보고 듣는것만이 아닌 발로써 아니 온몸으로 뛰어다니며 자연을, 인간을,
그리고 환경을 담아보고자 붙투했다.

한달에 한번 정기출사일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레임 그자체였다.

무엇을 담아볼까 또 어떻게 표현해볼까등 그러나 날짜 정하기도 무척
어려웠다.

김회원공장은 다음 일요일 특근, 박회원 공장은 일주일 야간 잔업근무등
어려운 여건속에서의 휴일.

그래도 우리는 새벽부터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바다의 일출, 학의 비상,
계곡의 맑은물.

모습이 아닌 소리까지 담고자 셧트를 누르지 않았던가.

그하는 동안 회원도 꾸준히 늘어 21명이나 되었고 그중 한국사진작가협회회
원만도 11명이 등록하게 되었다.

연간 전국 사진공모전에서 입선 입상작이 1백여점.

회원사진전시 7회를 하였으며 국제 사진공모전 출품등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히 1995년도에는 창립 9주년 회원작품모음집을 발간하였다.

월1회 정기출사외에도 거의 매주 작품활동을 하느라 가정에서는 낙제가장
으로 자녀들의 불평을 들어왔으나 92년 부인회가 발족되어 월1회 부인회
모임을 갖으며 내조하고 있으며 특히 근교 촬영시는 부부동반 촬용대회를
개최하여 그 품평을 하면서 사진토론을 하기에 이르렀다.

구미 영상회회원들은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공단지역 아니 구미전지역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사진 예술보급 활성화및
정착의 해로 삼아 구미 근로자를 대상으로 신입회원을 모집하여 자연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영상미학으로 표현하여 보다 건전한 여가선용
과 내면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예술의 동참을 원하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알리며
보다 성숙한 모습의 내일을 기약하는 바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