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로 찾아와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깜짝 놀란다.

더욱이 예고없이 방문하는 경우에는 실밥이 묻은 단순한 작업복에
머리는 부수수한 채로 일하다 나온 나를 보고 "디자이너가 너무
수수하네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TV드라마에 나오는 요란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의 디자이너를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아름다운 모델들이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입고, 걸어다니고, 쇼윈도를
장식하는 옷은 화려하다.

그러나 그 옷이 탄생하는 데에는 처절한 고뇌, 끊임없는 훈련, 단조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말이다.

그런 일속에서 늘 상큼한 모습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모습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세계적 컬렉션을 봐도 쇼가 끝난후 관객들에게 인사하러 나온
디자이너들은 한결같이 부수수한 머리, 편한 작업복에 피곤에 찌들어
경황없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90년 11월 시작해서 1년에 봄과 가을 두차례씩 작품을 발표해온
SFAA (Seoul Fashion Artists Association) 컬렉션이 지난 11월 쇼로
11회째를 기록했다.

회원들은 "한국패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사명감으로 진행하는
정기컬렉션 외에 자기 브랜드의 경영수지도 맞춰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과제때문에 쫓기듯이 일한다.

몇년전 "작품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세이 미야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강한 충격을 느낀 적이 있다.

파리에 진출해 컬렉션때마다 "일본적인 것과 서구적 요소를 잘 조화
시켰다"는 평을 받아온 이세이 미야케도 "팔리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에는 어쩔수 없는 모양이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국제화 세계화"가 가장 잘 이뤄진 곳이
패션계다.

분명 명품도 있지만 대개는 옥석 구분없이 마구 수입해 프랑스 이탈리아
라는 이름표만 붙은 저급품들도 많이 눈에 띈다.

디자이너는 이때 가슴이 아프다.

처음 SFAA컬렉션을 만든 주된 이유는 의류시장 전면개방을 맞아 우리
옷의 수준을 높여 국제경쟁력을 갖게 하자는 것이었다.

또 값비싼 외국 의류의 하청생산이 아니라 우리의 디자인을 제값받고
파는 의류수출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취지를 이해하는 단체나 개인이 그리 많지 않은듯 하다.

이 때문에 SFAA는 물론 파리나 도쿄등 해외컬렉션에 참가하는 디자이너
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다.

오사카지역 대기업들의 전면적 지원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파리에
입성한 일본 디자이너 코시노 히로코의 이야기를 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나라 일로 돌려야 하나.

우리나라처럼 아직 세계무대에 확고한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경우
한 디자이너의 해외진출은 그 사람만의 영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한국인의 예술감각 봉제기술 섬유산업수준등 한국문화를
총체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이너 기업 국가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해마다 늘어가는 패션쇼장을 가득 채운 디자이너 지망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우리 패션계의 든든한 장래를 예감케 한다.

부디 그들이 패션의 화려한 허상이 아니라, 힘들지만 보람있는 실상을
알고 기꺼이 생을 바칠만한 직업으로 택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디자이너들도 외국의 경우처럼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들고 몇대에 걸쳐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유명상표로 발전시킬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