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는 올해 성장률이 9.3%로 예상될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경공업 부문과 내수시장은 침체돼 중소기업들은 어느때보다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경기양극화 말고도 비자금파문 같은 돌발 사태가 터짐에 따라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사채거래마저 끊겨 그나마 어렵사리 버티던 중소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8일 확대 경제장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확대방안을 마련하라고
특별지시했다.

다급해진 정부는 진성어음의 할인확대,대기업에 납품대금 현금결제및
자금지원촉구,기술력을 담보로 한 신용대출,공제기금 지원을 통해
거래 기업 도산으로 인한 피해최소화 등을 추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에는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으며 지원효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 하면 시장경제 체제에서 민간기업간의 거래에 대한 정부개입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며 기업환경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정부 지시는
그때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부가 나서서 중소기업 지원을 촉구해도 사업전망이 어둡거나
불투명한 기업에 신용대출을 해줄수는 없다.

부실채권을 정부가 대신 갚아줄 것도 아니며 금융기관 직원의 책임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해마다 거액의 보증금액을 대신 물어주다보니 자본금이 바닥나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출연을 계속해야 하는 신용보증기금을
생각하면 오히려 심사를 강화하고 담당직원의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할
판이다.

정부에서 현금결제를 촉구하면 대신 납품가격을 깎고 어음결제 기간을
단축하라고 하면 어음 발행일을 그만큼 늦춰 발행하는 눈감고 아웅식의
편법 대응도 만연해 있다.

그나마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발주나 주문이 아예 끊길까봐 눈치만
보는 형편이며 대기업에서 원료를 공급받는 경우에는 제때에 필요한
물량을 공급받을수 있으면 감지덕지하는 처지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할 일은 실속도 없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 전시행정이
아니라 거래질서를 바로잡고 효율화하며 금융규제를 철폐해 금융기관이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신용대출을 하게 하는 것이다.

금융시장이 자율적이고 효율적이면 신용있고 유망한 중소기업에 신용
대출을 안해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특정 기업의 평판이나 사업전망은 위험 프리미엄의 가감으로
정확히 반영되게 마련이다.

심사과정에 문제가 있어 유망한 고객을 거절하고 부실기업에 대출해준
금융기관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현금결제와 신용대출이 보편화되게끔
시장환경이 변화돼야 한다.

그리고 이같은 변화를 보다 빨리 유도해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특단의 노력이 있어야겠다.

또한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거래규격및 품질의 표준화,내부거래의
단속,독점 납품의 근절,입찰 절차 및 결정 과정의 투명화등 불공정거래를
단속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일도 시급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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