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수 < 경희대교수 / 경영학 >

지난 봄부터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기획하고 있는 사외이사제도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사회의 본래 기능은 주주총회의 위임을 받아 최고경영자를 임면하고
업적을 평가하여 보상하는등 경영자를 감시하고 견제하며 비효율적 경영에
대한 조기 경보및 기업의 최고경영전략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이사회가 경영자들로만 구성되어
그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사외이사제도는 이러한 이사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포기되는 듯하더니 최근 노태우씨의
비자금파문 와중에서 정부당국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한 방법으로서도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다시 추진할 뜻을 밝혔다.

사외이사제도는 운용여하에 따라서는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해 볼만한 훌륭한 경영 감시제도인데도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싶었던지
학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의견이 제기되었다.

어떤 논자는 "미국의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 출석하여 사장이 제기하는
안건에 법적 뒷받침을 해주는 거수기 역할을 해주고 돌아갈 뿐 통제든
감시든 전혀 경영에 간여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 실증된 보고"라는 얘기도
했다.

또 사외이사제보다도 투자자들이 직접 경영자의 책임을 묻는 주주총회와
인수합병, 곧 경영권 인수시장의 활성화등이 문제를 푸는 첩경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물론 사외이사제도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의 비자금(혹은 뇌물)
제공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에는 어느 정도 동감한다.

하지만 사외이사제도의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의견을 달리한다.

먼저 사외이사제도의 무용성이 이미 미국에서 실증되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많은 실증 연구들중에서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우선 이사회의 구성에
있어서 사외이사들의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경영성과가 나쁜 최고경영자
들을 더 잘 해임시키는 경향이 있고, 기업간 경영권인수에 있어서도 독립적
인 사외이사들이 많을수록 주주의 부를 증대시키는 인수합병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영권인수시장 역시 불성실한 경영자들을 감시하는 제도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일이 잘못된 뒤에나 작동하며 막대한 자본이 필요함은
물론 많은 종업원들이 받는 피해를 비롯 거기에 수반되는 비용이 아주 크다.

필자는 이에 비해 사외이사들에 의해 활성화된 이사회의 역할을 더욱 기대
한다.

사외이사제도는 사전적 감시기능을 통하여 경영의 실패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기업이 경영과정에 대한 감시제도를 스스로 확립하면 주주들과의 대리비용
을 줄일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안에 따라서는 사외이사들의 풍부한 경험과
객관적 판단력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사외이사제도는 기업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도입해야지 정부가 간여하여 모든 기업들에 강제하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경우 선량한 일반투자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처럼 이사회 임원중 상당수를 사외이사로 선임
토록 하는등 자본시장의 규칙을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나,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면
경영권의 침해를 가져온다고 반발할 것이 아니라 이 제도의 긍정적인 면을
보아야 한다.

탁월한 사외이사를 갖고 있는 기업은 투자자들로부터 그에 상응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그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
보다도 사외이사가 최고경영자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최고경영자가 사외에서 자기와 친분있는 사람이나 기업과 어떤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을 임명해서는 기대했던 아무런 감시기능도 하지 못할 것이다.

경영자로부터 자유로운 사외이사를 선임하기 위해서는 주주, 특히 기관
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비롯한 역할 증대가 절대로 필요하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사외이사의 역할에 대한 책임과 보상도 잘 규정해야
한다.

끝으로 비자금 또는 뇌물제공과 같은 정경유착의 비리는 정치권력에만
책임을 돌리기보다 기업으로서도 그 동안의 일부 책임을 통감하고 차제에
사외이사제도 등과 같은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기업의 통할체제를 도입하는
데 보다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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