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기 < 한화 헝가리법인장 >


지난 10월 9일 체코에서는 보스니아내전 피해자들을 돕자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울려 퍼졌다.

체코정부가 10월 한달간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아의 달"로 정하고 이날
전국 40개 도시에서 전쟁피해 지원을 위한 세계 최대행사를 펼쳤던 것.

이 행사에는 이제트 베고빅 보스니아대통령까지 참석해 체코 국민들에게
전쟁참상을 전하면서 구호의 손길을 호소했다.

체코정부는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이웃국가의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한다며 이
행사를 개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행사는 체코의 온정주의를 보여주자는데만 목적이 있었던건
아니다.

내전이 끝난뒤에 찾아올 엄청난 복구수요를 체코정부는 염두에 뒀던
것이다.

지난 91년부터 시작된 구유고지역 내전은 중유럽국가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내전당사국과의 교역은 물론 몬테니그로 그리스 등 아드리아해와 지중해
연안국가들에 대한 수출도 지난 3년여동안 잠들어버렸다.

보스니아 평화협정 체결을 중유럽국가들이 누구보다도 반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혔던 남쪽으로의 수출이 다시 살아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원을
얻어 대대적인 복구사업이 펼쳐지면 엄청난 특수를 누릴수 있다는 기대다.

지정학적 위치로 보면 복구수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릴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헝가리.

벌써부터 헝가리 기업들은 이 지역 복구사업 참가를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헝가리는 구유고지역 전쟁 때문에 직접적으로 입은 수출손실만 연간 7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도나우강의 전통적인 해상무역 중계기지 역할도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중단됐다.

잃었던 시장을 되찾고 동시에 모든 복구수요의 전진공급기지로 나서
보스니아 내전종식을 경제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게 헝가리정부의 각오다.

헝가리정부가 예상하고 있는 전후복구사업 유망분야는 식품 의약품 가전
건축자재 자동차 기계공구류 통신장비 등이다.

헝가리에 진출한 한국기업들도 대응방안을 마련하느라 바빠졌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전쟁와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종전이후를 대비해 왔다.

한화헝가리현지법인(HFH)의 크로아티아 난민 구호활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헝가리 남부 케츠케미시에서 라면을 제조.판매하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
2월초 헝가리내 크로아티아 난민캠프에 라면을 기증한 사실이 현지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것을 보고 기업이미지 제고는 물론 현지인들에게 라면맛을
길들이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5천달러어치의 라면 16만여
봉지를 지난 9월 19일 크로아티아 난민청에 추가기증했다.

HFH법인장 황용기부장은 "구호물품을 전달한 곳이 크로아티아지역인데
요즘 보스니아지역에서도 주문의뢰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