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있으나 마나 관행이 앞서고 있다.

그 한 예로 피의자의 범죄사실을 비롯한 수사결과를 기소전에 공식
발표하고 피의자를 소환 또는 교도소에 송치할때 언론사의 사진촬영에
협조하는 관행이 적법한 것처럼 이뤄지고 있다.

이번 노태우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검찰수사기록 내용을
언론에 공표한 것도 그 범주에 든다.

이같이 기소전 피의자의 범죄사실을 보도자료등을 통해 공표하는 것은
형법 제126조의 "피의사실 공표죄"에 엄연히 해당된다.

그래서 지난 93년 검찰은 이것을 인정,가급적 피하고 공소제기와 함께
수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해놓고서는 이를 지키지 않아 피의자의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비자금사건을 비롯해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등을 지켜보면
피의자의 인권은 전연 고려치 않고 낱낱이 공개되는 느낌이다.

심지어 사진촬영에 협조하기위해 수사관이 피의자의 얼굴을 손으로
치켜올리는 경우도 있다.

언론도 덩달아 피의자의 죄질을 비난하면서 형량까지 저울질하기도
한다.

이같은 사진촬영은 피의자에게 모멸감을 주어 초상권 침해에 따른
명예훼손에 해당될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형법 제126조에는 "검찰 경찰 등 범죄수사를 담당하거나 감독 보조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5년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엄연히 규정되어 있다.

아무리 언론의 취재보도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다 하더라도 법을
어기면서까지 피의자인권을 무시하는 관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문화된 이 조문을 삭제하든지 말이다.

수사당국과 언론도 피의자가 유죄가 확정되기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형사소송법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피의자의 인권도 "취재나 알권리"이상으로 존중돼야하는 만큼 상충되는
서로의 입장을 합리적으로 처리할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이 관행을 고집하는 것은 피의자에게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줌은 물론 법치주의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처사이다.

서보영 <부산시 남구 용호동>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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