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접어들어 OECD가입 신청서를
내는 등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사고공화국 부패공화국으로 세계의 가십거리를 제공하면서
물질적인 성장에 걸맞지않은 정신적인 황폐함을 드러내고 있다.

물신숭배 도덕불감증시대를 치유할 대책이 아쉬운 상황이다.

동양학전공의 종교 교육학자로 건국대총장 한신대학장을 지낸 정대위
박사(78)를 종로구 돈의동 초동교회로 찾아가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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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유일하게 분단된 고국을 보는 느낌은 어떤 것인지요.

"한마디로 참담합니다.

분단국중 우리만 유일하게 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그곳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베를린장벽은
우리처럼 철의 장막은 아니었습니다.

교회만 하더라도 동.서독교회들은 왕래도 하면서 하나의 조직체를
형성하고 있었고, 어떤 의견도 양쪽의 합의하에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재정이 약한 동독교회를 서독교회에서 도움을 주더군요.

그러나 우리는 동족간 전쟁을 겪은데서 볼수있듯 독일과는 다른,
영구적 분단의 소지를 안고 있어요"


-동양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통일은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보십니까.

"남북 통일은 언제나 가능한 일입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통일될수 있어요.

그러나 통일이 되려면 여건이 조성돼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통일이 쉽지 않을것 같아요"


-우리의 종교열풍은 가히 세계적입니다.

그런데도 전직대통령이 연루된 부정부패가 만연,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굉장히 큰 질문입니다.

저는 우리 문화 전통속에 큰 결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 "흰옷을 좋아하는
온순한 국민"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얕잡아보고 그저 "온순하고 복종하라"는 의미의
평가를 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세계 어느나라치고 아침에 조용하지 않은 나라 있습니까.

동방예의지국도 한나라때 "너희가 중국의 법을 잘 따른다"는 의미로
그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말에서 유래했지요.

우리만 특별히 흰옷을 입는 것도 아닐뿐더러, 흰옷은 오히려 게으른
사람을 암시한다고 봐요.

결국 종교와는 다른 차원의 원인, 즉 민족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것같아요"


-마침 비교민족학을 전공하셨는데, 그렇다면 우리민족의 기질은 어떤
것인지요.

"한민족은 비둘기나 양처럼 온순한 민족이 아닙니다.

거세고 싸움 잘하고 격렬하고 흥분 잘하는 백성입니다.

옛 기록도 그렇고, 현세태를 진단해봐도 그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퍼스낼리티를 분석해보면 논리적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
격정적 기질이 다분합니다.

옛날 "동맹"이나 "무천" 등을 보십시오.

며칠씩 가무 술이 곁들인 잔치를 벌이고, 나중에는 싸움으로까지
번지지 않습니까.

우리민족의 드센 기질을 거기서부터 찾을수 있어요.

우리의 토속종교인 무속을 보십시오.

도덕에 기초를 둔 선악판단대신 오로지 격정적 몸짓이 전부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회 등에 가보면 고성을 지르고 격렬한 몸짓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민족 특유의 풍경이지요"


-그런 감정적 기질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요.

"보편적 가치가 설땅을 잃고, 주관적 도덕이 개입합니다.

주관적 도덕은 집단이기주의를 낳지요.

상식에 벗어난 특수한 가치라도 소속그룹에 이가 되면 그것이 보편적
가치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개인보다는 집단우선주의가 됩니다.

예컨대 같은 정당에서도 "00파" "XX파"하는 것이나, 동창생중에서도
"0기" "X기"하고 따지는 것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보편적 기반이 설땅을 잃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합니다"


-우리민족의 기질이 원래 그렇다면 시정방법은 없는지요.

"있습니다.

최현배선생도 지적했듯이 우리말에는 인칭대명사의 수가 적고 주어가
없는 문장이 많습니다.

1인칭은 기껏해야 "나" "저"정도이고, 그것도 "우리"라는 말로
통용됩니다.

주어가 없어도 문맥이 통하니, "나"와 "우리"의 개념에 분명한 선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은연중 그룹에만 충실하게 되고, 모든 행동이 그룹의
이해에 따라 좌우되게 됩니다.

그래서는 윤리적 반성을 할수 없습니다.

개인의 독립적 판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개인의 판단이 옳으면 그룹에서도 그 주장이 먹히고 통용돼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그룹의 이해와 다르더라도 용인돼야 건전한 단체가
됩니다.

요는 개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회는 발전할수 없고, 결코
평안할수 없다는 말입니다"


-일제시대 선각자들은 "민족개조론"을 주창하기도 했는데요.

"민족의 문화적 기질이나 성격은 좀처럼 개조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모두 나서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점점 개선할수는
있습니다.

특히 "껄끄러운 개인"들이 사회 요소요소에 있으면 그룹의 의견을
조정할 가능성이 많아지고, 점진적 문화풍토 개선으로 이어질수 있지요.

우리민족은 끝까지 싸워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적극적 기질이 있으므로
이것을 접목시키면 민족의 기질을 바꾸고,결국 민족의 발전도 가능하다고
봐요"


-우리는 과거에 안빈낙도나 청백리정신을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비자금사건도 그렇지만 현재는 돈이 최고라는 사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인간은 누구에게나 소유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나무랄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욕망을 다스릴수 있는 법이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나
그렇지 못한 실정입니다.

법위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역시 보편적 가치가 무시당하니 부패가 생성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태를 당장 추방하기는 어렵습니다.

책임 정직 보편적가치를 존중하는 시민의식이 중요합니다.

각성한 개인 또는 작은 단체가 옳은 주장을 끝까지 내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당당히 주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패발생 여지는 줄어들고 사회는 발전하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주자학에서 자구 하나하나를 따졌고,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상소할 정도로 강직한 면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엔 그런 정신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동감입니다.

요즈음엔 선비정신 사대부정신을 보기 힘듭니다.

기백이 없습니다.

사회의 비판기능을 맡은 언론의 책임이 막중한데도 언론이 그룹의
이해에 이끌려가지 않나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비판정신은 사회의 사활과 직결됩니다"


-최근엔 지존파사건 박한상사건도 있었고, 아버지를 살해한 교수도
있었습니다.

인간성 상실의 단면들이지요.

이같은 사회병리 현상을 치유할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도덕과 윤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종교나 교육계가 앞장서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기독교는 샤먼적 희열, 영적인 흥분쪽으로만 너무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육도 학교보다는 가정이나 사회교육이 우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사회 전반이 보편적 가치위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고, 개인들
삶의 기초도 거기에서 연유해야 합니다"


-우리경제가 단기간에 성장할수 있는 배경엔 높은 교육열도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은 제대로 가고 있습니까.

"제가 교육계에 오래 종사했기 때문에 이점에 대해서는 특별한 생각이
있습니다.

교육사적 측면에서 볼때 우리는 일본의 교육제도를 답습했지요.

소수의 관리양성을 주목적으로 한 입시제도, 국립대 모델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일본식 제도보다는 미국식 모델을 따랐어야 해요.

미국의 주립대는 개방된 대학으로 누구나 입학이 가능합니다.

우리도 국립대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입학할수 있도록 개방해야
합니다.

공부를 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교육시켜 내보내라는 말입니다.

한편 직업을 택하려는 학생을 위해서는 대학레벨의 전문학교를 설립,
그곳에 보내 자격증을 주는 제도를 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립학교의 난맥상도 없어질 것이고, 오늘날의 입시지옥도
사라질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편의상 일본제도를 답습했지만,우리의 고등교육 모델은
결정적으로 잘못됐다고 봅니다"


-6세때 미적분을 풀었던 김응용,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 등 우리에게도
어린, 젊은 천재들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천재들은 그 재질이 장년까지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주위의 여건도 불비했지만, 교육자의 소명의식이 부족한 탓입니다.

진정한 교육자여야 한다는 사명 또는 자세가 우리 교육자에게는
없습니다.

저 스스로도 교육자로서의 평가를 한다면 30점 정도밖에 매길수
없어요.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과거청산하다가 세월간다"는 식으로 과거에 얽매여
왔습니다.

새로운 집권자들이 바로 전단계를 부정하기 일쑤였지요.

그러다보니 정작 중요한 미래에 대한 비전제시가 부족하지 않았나하는
느낌이 있는데요.

"이승만대통령이 친일파들을 중용한 것은 큰 오류였어요.

민족정기를 유린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과거청산의 실마리는 얽히기 시작했습니다.

5,6공화국 들어서도 과거부정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는데, 너무
과거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숙청"과 "전진"을 적절히 조화해야한 발전이 있습니다"


-사회구성원들에게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다면.


"경제인들에게는 돈벌이에만 급급하지 말고, 도의적 경제활동을
추구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먼길을 돌아가더라도 정도로 나아갈때 국민들도 감사할 것입니다
또 한 사회는 언론이 강해야 발전속도가 빠릅니다.

언론인들은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는 정신을 잊으면 안됩니다"

[ 대담 양정진 체육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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