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하치우마 다타스씨는 지난해 9월 부친의 유물인 383점의 귀중한
한국문화재를 아무 조건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을 열어주었고 정부에서는 보관문화훈장까지 주어
하치우마씨의 뜻을 기렸다.

국내 매스컴도 이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하치우마 다타스. 기증문화재 특별전"이 열리고 있던 이달 초순, 국내
몇몇 신문에 "조선총독 강탈문화재 반환, 데라우치 수집135점 경남대에"
라는 제목의 놀랄만한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며칠뒤 일본의 데라우치가 후손은 이 기사의 내용을 정정해주지
않으면 기증계획을 취소하겠다는 강경한 뜻을 경남대에 전해왔다고 한다.

"정당한 값을 치르고 수집해 간 자료"를 후손이 한.일 친선을 위해
기증하는 것인데도 "강탈"이니 "반환"이니 하는 것은 기증자의 뜻을 왜곡한
것이라는 항의의 표시였다.

기증을 약속하는 가조인까지 일단 마친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니 어떤식
으로든 해결은 됐겠지만 이 일은 한.일 양국 국민의 과거사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데라우치 마사타게는 1910년 통감이 되어 부임한 즉시 황성신문 대한민보
대한매일신보를 정간시키고 합병조약조인을 성사시켜 그 공로로 초대
총독이 됐다.

악명높은 헌병경찰제도를 만들어 무단통치를 강행했던 그는 취임초
자신의 암살미수사건을 빌미로 한국인 저명인사 600여명을 검거해 범죄를
날조하고 악독한 고문끝에 105명을 기소한 "105인사건"으로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총독재임시 그는 총독부박물관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조선통이었던 일본인 골동상 점구방지진을 내세워 수많은 문화재급
유물들을 사들였다고 한다.

이런 경로를 통해 수집한 고전적류 1,000여종 1,500여점이 지금 야마구치
여대 데라우치문고에 소장돼 있다.

데라우치의 행적을 되돌아보면 그가 모아놓은 한국문화재가 "정당한 값을
치르고 수집해간 자료"라고 믿을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재 파악된 것만해도 2만9,000여 점이나 된다는 일본내의 한국문화재를
모두 되찾아 오겠다는 욕심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 꼭 그럴 필요도 없다.

문화재란 어느곳에 있는 자국문화를 알리는 첨병역할만 잘하면 된다.

자존심까지 내동댕이 치고 조급하게 문화재를 되찾아 오겠다는 이상스런
과욕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