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송 <한양대 교수/법학>


지난 봄 세계화추진위원회가 국내기업의 경영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미국식의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자는 안을 내놓았다가 기업들의
반대로 무산되는가 싶더니 최근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시비와 관련하여 다시
사외이사가 거론되고 있다.

요점은 비자금사건은 기업이 적절한 견제없이 방만히 경영된데서 비롯된
만큼 사외이사를 두어 경영을 감시한다면 비자금과 같은부정한 거래를
막을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회사가 지역사회의 명사라든가,법률가등 회사와 무관한 인사
들을 이사로 선임하는 예가 많다.

이들은 본업이 따로이 있으니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이사회에 출석하여 주어진 사안에 대해 표결을 할 뿐이다.

이것이 사외이사이다.

따라서 미국의 사외이사란 세추위가 추진하는 것처럼 법상 강제되는 제도가
아니고 회사가 임의로 운용하고 있는 임원인사방식이다.

요컨대 비상근이사를 말하는데 이러한 비상근이사는 우리나라 기업에도
거의 예외없이 자리잡고 있다.

세추위의 모델은 차라리 국영기업체의 이사에 가깝다.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에 의해 국영기업체에는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전원을 비상임, 즉 사외이사로 두게 되어 있다.

세추위안은 이 제도를 민간기업에까지 확대하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비자금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사외이사가 부정의 방지에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이미 증명한바 있다.

국영기업체 역시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조성에 기여했다고 하니 말이다.

비자금 뿐만이 아니라 비상근이사는 경영을 감시,통제하는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점은 미국에서도 같다.

미국의 사외이사라는 사람들은 1년에 적으면 한 두번, 많아야 대여섯번
소집되는 이사회에 출석하여 사장이 제기하는 안건에 법적 뒷받침을 해주기
위하여 거수기의 역할을 해주고 돌아갈 뿐, 통제든 감시이든 경영에 기여
하는 바가 전혀 없다는 것이 웬만한 회사법교과서에는 다 소개되어 있는
실증된 보고이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경영감시란 기업의 업무에 대한 정보수준이 전제
되어야 하는데, 사외이사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액의 거마비만 받는 사외이사가 능동적으로 기업정보를 수집하려 할
동기가 있을리 없고, 회사에 대한 물리적 접근이 뜸하다보니 의욕이
있다한들 유용한 정보가 입수될 리 없다.

굳이 사외이사를 두도록 의무지원다면 경영감시목적보다는 정부나 정치
단체의 퇴임인사들의 낙하산식 취업자리로 활용되기 십상이다.

기업들도 어차피 두엉 한다면 대정부 로비에 이들을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되면 비자금의 보다 활발한 루트가 열릴지도 모른다.

받으라고 다그치는 기업의 서울에 견딜 힘이 없는 대통령이 마지못해 받은
데서 비자금의 사연이 비롯된 것이라며, 사외이사론도 얘기거리가 될 만
하다.

그러나 절대자라 표현해도 좋을 한국통치자의 위상을 감안할때, 기업의
감시체제가 부시라여비자금사건이 생겨났다는 것은 우스개소리에 불과하고
사외이사론의 발단으로는 절적치 않다.

우리 사회에는 기업이 부정한 돈을 만들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음을
너나없이 잘 알고 있다.

사방이 겹겹이 규제의 벽으로 둘러싸여져, 장사께나 하려면, 높은게
대통령이고 낮게는 마을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어두운 인연을 맺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고는 어떤 해결방법도 없음을 역시 잘 안다.

그러므로 방법이라면 속히 거미줄같은 규제를 풀어 기업이 자유로운 숨을
쉬며 돈벌이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업의 내면에서 문제를 찾는다면 경영구조에 경쟁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상스레 경영권의 보호에 자비로워,지배주주가 경영권의 도전을
받지 않고 주주총회를 침묵시킨 채 안주할수 있다는 사실이 "고인 물이
썩는다"는 속담을 실증하던 것이다.

경영자가 수백억원의 회사돈을 비자금으로 썼다면 주주들의 책임추궁이
빗발칠 듯도 하련만, 잠잠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권리의식이
희박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주주들이 경영자의 책임을 붇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는 제도의 흠이 주원인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경영구조가 보다 충실한 경쟁에 근거하여 짜여지도록
상법.증권거래법 등 관련법제를 개선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에 보다 접근하는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