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도 저물어갈 무렵, 가정이 마침내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것은 후비의 성친을 위하여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사오니 언제쯤
후비로 하여금 성친을 다녀오도록 허락하실 것이냐고 감히 여쭈워보는
상소였다.

황제는 다음해 정월보름 상원날에 후비의 성친을 허락한다는 칙서를
가정에게 내렸다.

그 칙서를 받은 영국부와 녕국부에서는 설을 제대로 쇨 여유가 없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후비 성친 준비를 점검하느라고 바쁘게 돌아갔다.

해가 바뀌어 정월 보름을 이레 앞둔 초여드렛날 왕궁에서 태감이
직접 와서 후비의 성친 준비 상황을 살폈다.

그 태감은 후비가 옷을 갈아입을 곳, 앉아서 사람들을 맞이할 곳,
잔치를 벌일 곳, 휴식할 곳 등등 후비의 일거수 일투족과 관련된
장소들을 일일이 돌아보며 그 장소들을 자기가 새로 정하기도 하였다.

지방을 순찰하며 경비를 총괄하고 있는 태감들은 수하의 젊은 태감들과
함께 후비 행차를 대비하여 각처에 장막을 치고 경비 병력들을 배치하였다.

가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어디로 나가고, 어디에서 꿇어 엎드리며,
어디서 진지상을 올리고, 어디서 보고를 드릴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세세히 지시하였다.

공부의 관원들과 오성수비병들은 후비의 가마가 지나갈 길을 깨끗이
쓸고 사람들이 그 길을 밟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보옥의 큰아버지인 가사 대감댁에서는 장인들을 불러 모아 꽃초롱과
불꽃 모양의 장식들을 만들게 하였다.

그렇게 마지막 준비를 하는 동안 열나흘날이 되었다.

이제 내일이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후비가 성친을 올 것이었다.

가씨 가문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흥분된 가슴을 안고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보름날 오경, 즉 아침 세시가 되자 대부인을 비롯하여 작위를 가진
사람들은 작위의 등급에 따라 예복들을 차려입었다.

후비 별채 원내의 장막들은 용이 춤을 추는 듯하고 휘장은 봉황이
나는 듯하였다.

게다가 각종 금은 기물들은 눈부시게 빛나고 주옥 보석들은 광채를
서로 다투는 듯하였다.

세발 달린 솥에서는 각양 향료를 섞어 만든 향이 타오르고, 병에는
장미와 월계화 같은 꽃들이 꽂혀 있었다.

집 안팎은 기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였다.

가사 대감댁 사람들은 서쪽 성문 밖까지 나가 후비 행차를 기다리고,
대부인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영국부의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 큰길에서 후비 별채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장막이 쳐져 일반인들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