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은 농무라는 시에서 시골 장터의 주막거리 화투판을
걸판지게 노래했다.

화투판은 장터의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한 것이며 거나한 술판이
익고 싸움판에서 박터지는 사람이 생기는 해질녁이면 하루의 난장판도
이우는 것이다.

주막거리 화투판은 그러나 술찌께미라도 날라주는 선머슴들과 곁다리
구경꾼들, 그럴듯한 관전평이 있어야 비로소 구색을 갖춘 놀이판으로
성립된다.

이들 곁다리들은 모두가 구전을 뜯어먹고 살지만 직접 돈을 거는 내기꾼
못지않게 진지한 시장참가자들이다.

증권시장이 자본주의 경제를 지탱하는 정밀하게 고안된 투기시장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시장에서 일하는 종사자도 많고 관련기관은 시장경제의 어느
단체나 기구들보다 효율적으로 잘조직되어 있다.

증권시장을 화투판에 비긴다고 화낼 사람이 많겠지만 증권시장의 원조인
영국의 증권시장이 부둣가 객점의 투전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화낼 일만도 아니다.

증권감독원 증권거래소 증권업협회 증권예탁원 증권전산 증권금융등 소위
"증권"이라는 단어를 달고 있는 관계 기관들은 모두 증권시장이라는 큰
장터를 운영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가격 움직임을 감시하고 투자자에게 뒷돈을 대주며 결제를 보증하는 역할은
모두 이들이 맡고 있다.

누구든 허튼 수작을 부릴수 없도록 불공정 거래를 감시하는 어깨 역할도
이들 관계기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들은 투자자도 아니며 증권회사 직원도 아닌 말하자면 타인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국민의 기본권이기도 한 주식투자를 할 수 없다.

이렇게 관계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9월말 현재 모두2천6백여명.

거래소와 감독원에 5백20-30명씩이 근무하고 예탁원에 5백80명, 전산에
4백60명, 증금에 3백명, 협회에 1백90명이 오늘도 시장과 씨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가 투자자들의 구전을 뜯어먹고 산다는 점에서 얼마간씩
눈총을 받기도 한다.

투자자들이 내는 수수료중 증권관계기관에 흘러가는 돈은 줄잡아 한해에
2천5백억원-3천억원선.

요즘은 주가마져 떨어져 투자자들의 눈총도 더욱 따가와지고 있는 중이다.

누가뭐래도 이들이 있어야 시장이 성립한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있어 전산거래가 가능하고 법률 전문가들이 있어 증권
분쟁은 조정된다.

이들외에도 투전판의 뒷돈(신용거래 유통금융)을 대는 증권금융 사람들이
있고 주권을 보관하고 결제를 책임지는 예탁원 사람들도 엄연한 증권가의
식구다.

다종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이 증권가의 외곽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중엔 증권가를 암행하는 요원들도 빼놓을 수 없다.

"조사권"이라는 극히 미약한 권한밖에 없지만 증권가의 사기도박꾼이랄
수도 있는 작전 세력들을 추적해 잡아내는 증권가의 요원들은 감독원
사람들이다.

거래소 사람들은 말그대로 판을 벌린 사람들이다.

판을 열어야 개평을 뜯고 시장이 돌아간다는 데는 그누구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증권시장은 판중에서도 큰판이며 시장경제의 핵심적인 존재라는 데서
거래소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공인회계사들도 이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증시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신뢰성있는 기업 회계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역시 증권시장의 일각을 이룬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증권감독원이 이들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이들 증권가의 타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자.타인의 얼굴을 통해
우리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도 의미는 있을 게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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