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각종 모임이 많아지고 따라서 부부동반의 기회도
잦아진다.

대개의 경우 남편들의 모임에 부인이 동반하여 참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들은 천부적인 사교성으로 부인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나면 금방
친해져 남편이야기, 자년 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운다.

반면에 부인들의 동창회나 계모임등에 남편이 동반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때 남편들은 사회적 지위나 환경등의 차이가 커서 공통의 화제도
빈약할 뿐더러 서로 체면을 차리느라 속마음을 쉽게 터놓지 못하는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모임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이죽회라 불리는 우리모임은 처음에 부인들의 모임으로 시작, 지금은
남편주도형 모임으로 바뀐 케이스이다.

이화여대 약학대학 26회(75년 졸업)동창생인 4명의 부인들은 학창시절
부터 단짝처럼 지내던 절친화 친구사이였다.

그러던 것이 결혼후 모임에 남편들을 대동하고 나서부터 부부모임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남편들이 의기투합, 더
절친한 친구사이가 되어버려 부인들이 시샘을 할 정도가 되었다.

이죽회의 뜻은 "이대 출신 아내를 둔 대쪽같은 남자들"이란 뜻인데 모두
성격이 대쪽같이 곧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모임은 네째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모여 식사를 나누면서 친목을
다진다.

이 모임을 15년째 갖다보니 이제는 한 가족처럼 되어 집안의 길흉사를
함께할 뿐 아니라 사업상의 충고 등도 아끼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이죽회의 구성원을 소개하면, 이종석.김경자(왕십리 경민약구 운영)부부,
김철형(한국이동통신 대리점대표).박영화(천호동 새우주약국)부부, 차재열
(베델서점 대표).김현란(대전 금란약국)부부, 그리고 회장으로 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는 필자와 아내 조진희(자양동 청사약국)이다.

네 가정모두가 약국을 경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모일때마다
약국경영에 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약국경기에 대한 정보와 최신 학술정보 그리고 약국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어려울때 발벗고 나서 해결해 주기도 한다.

이죽회는 결석이 절대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

15년동안 단 한달도 거르지 않고 모였으며 모임때는 대전에 있는 차재열
사장 부부도 서울로 올라와 반드시 참석한다.

개신교 장로인 차사장만 빼놓고 모두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지만
종교의 구애됨이 없이 모임때마다 차사장의 기도로 시작한다.

이죽회는 그동안 친목을 위해 부부동반 혹은 가족동반으로 등산, 여행
등을 많이 다녔지만 몇년전부터는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하기
위해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우리모임이 친목행사로 끝나서는 안되겠다 싶었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사회에 봉사하는 부모상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액수가 적게 모였지만 어느정도 기금이 모이면 주위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 뜻있게 쓰려 한다.

현대사회가 갈수록 핵가족화 되어가고 이웃간의 사랑이 메말라져 간다고
하지만, 이러한 작은 모임들이 이 사회에 많이 사회전체를 구성할 때 이
사회는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