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승 < 국회 통상산업위원장 >

올해 국회통상산업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 벌어졌다.

예년의 국감때보다 꼼꼼한 정책비판과 대안제시로 관계부처나 기관들로
하여금 크게 곤욕을 치르게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통상산업부 산하기관인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KIDP)에 대해서는 여.야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사업실적을 크게 올린데 대해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추측컨대 아마도 통산위 의원들사이에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가 형성되었던 모양이다.

최근 산업디자인 보호와 규제를 주제로 하는 디자인라운드(DR)가 새로운
유행어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DR는 결코 급작스럽게 생겨난 문제가 아니다.

"무역과 관련한 지적재산권협약"( UR-Trips )의 26조는 "복제디자인의
상품을 제조 판매 수입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이미 지적하고
있다.

쉽게 말해 남의 디자인을 베낀 모방상품으로는 앞으로 경쟁할 수 없다는
얘기다.

산업디자인이 기술개발에 비해 10분의1의 적은 투자와 3분의1의 짧은
기간에 매출과 부가가치를 크게 올려주는 경쟁력의 지름길로 주목되고 있어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의 수준은 현재 선진국의 50~60%,경쟁국의 70~80%정도
로 평가되고 있다.

혹시 우리에게 도깨비방망이라도 있으면 몰라도 이러한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방법으로는 꾸준한 산업디자인의 저변확대와 인적자원을
육성하는 길밖에 달리 왕도가 없다.

우선 산업디자인의 물적토대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 경영자의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경영자들의 인식부족은 "우수한 산업디자이너"들로 하여금 다된 제품에
색칠이나 하는 한낱 "칠장이"에 머물게 하는 근본원인이 된다.

그 누구보다도 소비자들과 가까이 있는 산업디자이너야말로 마케팅에서
부터 생산.유통까지 전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업경영에 전진배치"해야
한다.

경영자의 인식이 바뀌면 기업의 산업디자인에 투자하는 자세가 달라지게
되고 나아가 이는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 결국
우리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종래 대학교육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국제감각이 뛰어나고 산업현장에
보다 가까운 전문디자이너를 많이 길러내어 지역별로 적절히 배치, 기업의
수요를 창출하고 세계화에 부응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디자인 부문에 대한 투자는 93년 12억원에서 95년 85억원
으로 7배 이상 늘어났으나 절대적인 금액을 비교해보면 영국의 15분의1,
대만의 5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공업발전기금도 산업디자인부문에
할당되는 비중이 아주 적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과 같이 이처럼 보잘것 없는 예산으로 산업디자인
의 저변확대와 인재육성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현재 통산부와 KIDP가 산업디자인의 선진화를 위한 각종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므로 정부와 국회 여.야를 막론하고 혼연일체가 되어 산업
디자인 진흥을 도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