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내용은 남녀가 티격태격 싸우며 사랑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보옥과 대옥은 방금 자기들이 싸운 상황과 흡사한 연극 장면을 보며
웃음을 삼켰다.

보옥과 대옥은 하마터면 이렇게 다정히 이향원으로 나와 이런 구경도
못할뻔 하였다.

보옥은 보옥 나름대로 대옥은 또 대옥 나름대로 성깔을 부린 것이
다시금 부끄러워졌다.

보옥이 대옥이 선물로 준 염낭을 속저고리에서 꺼내 보여주면서
대옥을 무안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한단계 더 나아가 대옥의
마음을 쿡 찔러놓았다.

"그렇다고 향주머니까지 가위로 자를 필요는 없잖아.

처음부터 향주머니를 나에게 만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거야.

자, 이 염낭도 돌려줄 테니 받아"

염낭을 던지다시피 대옥에게 안겨주고는 보옥이 휑하니 문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그러자 대옥은 그 창피를 감당할 길이 없어 두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흑흑 소리내어 울더니 다시 가위를 집어들고 염낭마저 베어버리려고
하였다.

사태가 이쯤 되자 보옥이 한 발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얼른 대옥에게로 달려가 염낭을 빼앗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염낭이 무슨 죄가 있어?"

대옥은 가위를 팽개치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염낭을 필요없다면서 나에게 집어던졌잖아요.

필요없는 물건 잘라버리려는데 왜 이래요?

보옥 오빠, 정말 이랬다 저랬다 할 거예요?

그러려면 나랑 상종할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요.

나도 오빠 보기 싫어요"

그러면서 대옥이 침상으로 올라가더니 벽 쪽을 향해 돌아누워 울어대기만
했다.

대옥이 우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파진 보옥이 침상 가까이 다가가
대옥에게 잘못을 빌며 위로하였다.

보옥의 위로에 마지못해 일어나 앉은 대옥이 또 신경질을 부렸다.

"병 주었다 약 주었다 왜 이리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거예요?

그럼 난 딴 데로 가버릴 거예요"

대옥이 침상에서 내려오더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대옥의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보옥이 빙긋이 웃으며 자기도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그러면 나도 따라가야지. 대옥이 가는 데면 어디든 따라갈 거야"

그러면서 대옥에게서 빼앗은 염낭을 다시 허리에 차려했다.

그러자 대옥이 보옥에게서 염낭을 홱 빼앗으며 눈을 흘겼다.

"방금 싫다고 던져놓고선 왜 또 허리에 차는 거예요? 정말 염치도
없어"

대옥이 눈을 더욱 흘기다가 그만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보옥도 크게 따라 웃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