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은 끝없이 퍼져가고 있다.

대기업그룹의 총수들에 이어 국영기업과 은행장들도 소환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져 있어 비자금파장은 조기에 수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거래가 위축되고 기업은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어 이러다간
경기 연착륙이 기대되던 내년 경제사정이 예상보다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경제에 다소 충격이 가더라도 이번 기회에 잘못된 관행과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경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기업이 건네준 돈이 성금이든,강제성을 띤 헌금이든 "자기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한 그룹총수의 말을 되씹어보면 기업의
말못할 속사정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기업이 돈을 갖다주지 않고서는 사업하기 어렵게 돼 있는건 엄연한 현실
이었다.

"구시대의 관례"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갖다준 것이 정당화될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자금파문이 경제에 던져주고 있는 충격은 첫째 기업의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위축은 경기의 급격한 하강을 부채질하고 성장잠재력을 잠식시킨다.

에베레스트 정복이 위험을 무릅쓰려는 도전과 신념의 결과이듯 기업투자는
기업가의 기업하고자 하는 의욕의 산물이다.

둘째로 비자금사건은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대기업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모습이 연일 외신에 보도
되면서 어렵게 쌓아올린 한국기업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과 최고경영자의 이미지가 상품판매는 물론 대규모 해외 건설공사수주
등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당장 우리 기업의 해외 차입비용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신용평가 기관에서는 한국의 비자금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재조정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그에 따라 기본금리에 가산금리(프리미엄)를
더한 조달금리 수준은 당연히 올라간다.

일본 다이와은행 파문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일본계 은행들의 자금조달
금리는 올라갔다.

이른바 저팬 프리미엄이 그것이다.

비자금파동으로 인한 코리아 프리미엄이 높게 형성되면 금리상의 부담
가중은 말할것 없고 국가이미지 손상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기 어려운
손실이다.

사채시장이 얼어붙어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

이들이 한국증시와 경제를 어둡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민노총출범과 비자금문제가 앞으로의 노사관계를 어렵게 만들 것이고 이것
또한 경제성장에 걸림돌이다.

다시 도약하려면 하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기업하기 싫은 나라에서 경제도약을 꿈꾸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낚으려는 것과 다를바 없다.

비자금수사가 경제에 주는 주름살을 줄이고 다시 한번 경제도약에
매달리게 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