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울을 돌아 가니 크고 작은 문들이 여럿 있었다.

또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나 하고 일행이 머뭇거리고 있자 가진이
빙긋이 웃으며 안내하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쪽 문을 나서게 되면 곧장 뒤뜨락이 나오는데
뒤뜨락으로 빠져나가면 길을 질러가게 됩니다"

가진이 인도하는대로 일행이 따라가니 거기 출입문이 하나 있었다.

그문을 나서자 과연 장미꽃이 만발한 뒤뜨락이 펼쳐졌다.

그 뜨락은 각종 꽃나무들로 엮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는데 그 울타리를
끼고 돌자 맑은 시냇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 시냇물은 도 어디서 흘러오는 걸까?"

일행이 시냇물이 위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가진이 손을 들어 먼곳을 가리키며 설명하였다.

"저쪽 수문에서 흘러나온 물이 동굴을 지나 동북쪽 산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아까 우리가 지나온 그 마을에 이르게 되지요.

거기서 물길은 서남쪽으로 또 한갈래 가지를 치고 흐르다가 바로
여기서 다시 합하여져서 이 시냇물이된 것이지요"

가진의 손과 팔은 물길의 방향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거참 신묘하게 물길을 돌렸다가 합했군"

일행이 시냇물에 손을 담그기도 하며 감탄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길을 재촉하여 나아갔다.

그런데 이게 또 어떻게된 일인가.

큰 산이 앞을 턱 가로막았다.

"이거 우리가 길을 잘못 든거 아냐?"

그 산을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몰라 일행이 당황해 하자 가진이
또 나섰다.

"걱정하지 마시고 저만 따라오십시오"

가진을 따라 일행이 산길을 타고 내려가 산모퉁이를 돌자 넓고 평탄한
길이 나타났다.

그 길끝에 높은 문이 서 있었다.

"아"

일행은 일제히 입을 다물줄 몰랐다.

그 문이 바로 일행이 처음 들어왔던 그 정문이 아닌가.

이제야 비로소 후비 별채 원내를 한바퀴 도는 일주가 끝난 셈이었다.

문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피로한 기색들을 띠었다.

보옥도 그 정문을 보자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일었다.

누구보다 대옥이 보고 싶어졌다.

대옥에게 가서 오늘 문객들과 이름 짓기 놀이를 하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문재를 겨루었던 일들을 자랑해야지.

대옥의 얼굴에 감탄의 표정이 어리겠지. 그러면서 보옥은 시녀 습인을
안아보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