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2조원의 황금알을 잡아라"

국내 발전산업이 경쟁체제로 본격 돌입하면서 발전설비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다.

내년초 한국중공업의 발전설비 일원화 조치가 해제됨에 따라 이 분야가
신규 유망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의 장기 전원개발계획에 따르면 국내 발전설비 시장규모는 연간 2조원
규모.

한중이 독식해오던 이 시장을 이제 민간기업이 나눠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장선점을 위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중공업 한라중공업등 국내
중공업체들의 각축전은 치열하다.

이들은 발전설비분야를 20세기 마지막 진출시장으로 보고 선점경쟁에 총력
을 기울이고 있다.

또 발전설비시장에 대한 참여는 민영화 방침이 정해진 한중의 인수와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어 중공업체들은 시장진출에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한중 민영화에 참여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향후 재계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다.

게다가 "무한대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아시아 각국의
발전시장을 감안하면 이들 업체로선 "베팅"을 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셈이다.

발전설비시장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앞으로 이 산업이 국내외적으로
급성장할 분야라는 전망에 근거를 두고 있다.

통산부의 향후 발전소 건설계획을 바탕으로 추산하면 국내 발전설비 시장
규모는 약 2조원에 달한다.

이중 기자재 공급분을 제외하더라도 국내 발전설비시장은 최소 1조2천억원
상당은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또 정부의 민자발전소 발주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간기업들의 자체
발전소 건설까지 포함하면 시장규모는 더욱 확대될게 뻔하다.

그러나 업계가 발전설비산업을 금세기 마지막 투자분야로 보는 이유는
단순히 국내시장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내시장보다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시장의 확대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중국을 비롯해 태국등 동남아 국가들은 오는 2000년대까지 장기 발전소
건설계획을 최근 잇따라 수립하는등 아시아 지역의 발전시장은 급팽창
추세이다.

아시아 발전설비시장은 현재 일본이 전체의 약 40%를 잡아 먹고 있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은 이미 엔고등으로 경쟁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유력
하다.

또 아시아 발전설비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은 일본의 첨단기술보다
한국 수준의 범용기술이어서 국내 업체들이 그만큼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같이 유리한 여건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국내 중공업체들은 선진 발전
설비 업체와 기술제휴를 서두르는등 잰걸음을 하고 있다.

또 한중의 경우 발전설비 일원화 해제에 따른 돌파구로 그동안의 기술축적
을 발판삼아 해외시장 진출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한중은 특히 50만Kw급 한국형 표준화력발전소 모델을 바탕으로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 발전설비시장을 개척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발전소 건설이 활발해지면서 엔지니어링 업계도 해외발전
사업에 적극 진출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동안 건설업체나 중공업체의 하청으로 발전소 설계만을 담당했던 국내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최근 주계약자로 발전소 건설에 참여하는 한편 전력
설계 관련 인력을 보강하는등 발전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원자력발전소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전력기술과 해외 화력발전소
프로젝트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등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최근들어선 삼성엔지니어링 대림엔지니어링 대우엔지니어링등도 발전시장이
급격히 확대될 전망에 따라 발전 프로젝트 관련 인력을 보강하는등 행보를
빨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업계의 이같은 발전설비시장 참여가 반드시 "장미빛"인 것만은
아니다.

발전설비 시장의 경쟁체제 형성은 대외개방을 뜻하는 것이기도 해서다.

예컨대 한중의 발전설비 일원화 해제는 반드시 국내 민간업체의 시장참여
허용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일원화 해제조치는 외국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민자발전 건설에 외국기업도 50%미만의 지분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발전설비분야에서도 이제 외국기업에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발전설비를 국제 공개경쟁입찰에 부쳐야 할 상황이 됐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국내기업들은 안에서도 그렇지만 밖에선 더욱 힘겨운 경쟁을
해야할 판이다.

국내 발전시장도 소위 "무한경쟁의 논리"가 지배하게 된 셈이다.

업계 일부에서 개방을 동반한 발전설비시장의 경쟁체제 돌입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국내 발전시장의 경쟁격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됐다.

관련 기업들이 부단한 기술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평범한 주문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