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증권사엔 8백82개지점(영업부및 외국사 국내지점포함)에 1만8천
여명의 일선 증권영업맨들이 있다.

증권사 직원들은 일선영업맨이 되는 순간 주가의 부침과 약정경쟁을 자신의
원리로 떠안게 된다.

증권영업맨들의 이력서는 주가그래프의 궤적을 닮게 마련이다.

지난 85년부터 89년초까지 대세 상승기의 환희와 89년부터 92년 중반에
이르는 대세 하락기때의 깡통계좌정리, 중소상장사 부도파문이 이들의 삶에
뚜렷한 자국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약정경쟁은 우리나라 증권사의 수익구조를 감안할때 거의 숙명적인 일이다.

본점부서중 돈을 벌어야 하는 주식부나 인수부가 엄청난 평가손과 덤핑
경쟁으로 멍이 들고 있는 만큼 일선 영업맨들은 매매수수료 수입으로 이를
벌충해야 할 ''책임''을 진다.

일선 영업맨은 이 책인을 약정이란 형태로 나눠 갖는다.

영업맨의 애환은 바로 약정경쟁에서 시작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권사 영업맨은 자신의 ''국내 경쟁력''이 전체증권사 영업맨중에서 몇등
인가 하는 굴레를 쓰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전산단말기만 두드려보면 하루단위, 아니 시간이나 분단위로 자신의 약정
실적이 떠오르는 체제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할당된 약정은 어떻게 달성하는가.

영업맨들은 처음엔 주변친지들의 계좌에 의존한다.

차츰 경력이 쌓이면 자신의 고객도 늘어난다.

그러나 이정도로는 회사가 기대하는 수준까지 약정고를 올릴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일부 영업맨들은 작전의 유혹을 받는다.

H증권 영업부 김모대리는 운좋게 큰손의 계좌를 굴리는 바람에 한달 1백억
원을 넘었다.

회사가 개인사무실까지 배정하는등 최상급대우를 할즈음 그 큰손과 김대리
는 B약품 주가조작의 주범으로 구속됐다.

아무리 약정을 많이 올렸더라도 작전에 말려들든지 고객과 분쟁이 생기면
책임은 영업맨 혼자 지게된다.

그래서 어떤 영업맨들은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선영업의 원죄를 벗어
던지려 한다.

D증권 K지점장은 증권사 일선영업맨 1만8천여명 가운데 절반가량은 자기
월급만큼도 일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태업이 심해지면 애개 본사의 후선부서로 보내진다.

후선부서가 다 편한 것은 아니지만 일선영업은 그만큼 위험하고 힘든
것이다.

대부분의 보통영업맨들은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야말로 1인4역을 한꺼번에 해내는 역량있는 배우다.

우선 종목발굴을 위해선 경기동향과 산업동향 기업실적등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분석가)가 돼야 한다.

투자자의 주문을 받아 매매를 체결하는 브로커역할에 일임매매가 횡행하는
만큼 팔고 살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는 트레이더역할도 하지 않을수 없다.

고객의 손실이 커지거나 분쟁이 생기면 ''잘못된 경영에 책임을 지고''
쌈지돈까지 털때도 많기 때문에 반은 경영진이다.

증권사는 영업맨이 약정을 많이 올리는한 영업현장에 계속 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복병은 있다.

주가의 부침은 예측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잘 나가던 수많은 영업맨들이 일시에 허물어지곤 한다.

이력이 붙은 영업맨들은 느닷없이 실패해 반폐인이 되다시피한 선배나
동료영업맨의 이름을 한두명씩은 댈 수가 있다.

그들이 지금 자신의 훗날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상념에 몸서리칠 때도
있다.

''유한책임 증권주식회사의 무한책임 만능사원''인 영업맨들만의 고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