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5일 런던금융시장.

이날 따라 다이와은행이 눈코뜰새없이 분주히 움직였다.

금리수준이나 장단기물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끌어들였다.

국제기준금리인 리보금리에다 0.3% 포인트이상이나 더 이자를 얹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결코 볼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때까지만해도 0.1% 포인트대를 나타냈던 저팬 프리미엄(리보금리와
일본은행들의 자금조달금리의 차)도 급격히 확대됐다.

금융업계에서는 대단한 불명예인 프리미엄이 고착화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0시간뒤의 도쿄.다이와은행은 뉴욕지점에서 부정거래로
1천1백억엔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고 공식발표했다.

런던에서의 긴급한 자금조달은 발표후의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임이
곧바로 드러난 것이다.

이사건은 일본금융기관들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부실한 경영내용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바꿀수 없는
것으로 굳어졌고 이로인해 저팬프리미엄은 다시 상승했다.

지금 일본금융기관들이 국제자금시장에서 돈을 융통하기 위해서는
우량은행들조차 리보금리에 0.4-0.5% 포인트는 더 물어야 하는 형편이
됐다.

심지어는 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할 때 일본은행업체의 보증을 받으면
무보증채와 같이 거래되는 현상마저 생겨나게 됐다.

저팬프리미엄이라는 것은 비단 다이와은행의 부정거래사건때문만은
아니다.

올들어 일어난 잇단 금융사고라든지 막대한 불량채권 등으로
일본금융기관의 신용은 이미 땅에 떨어져 있던 참이다.

미국의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는 종전A급이던 일본은행들의
신용을 무더기로 C D E급으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금융대국일본 이 금융후진국 으로 일거에 전락한 것이다.

일본금융기관및 금융당국에 대한 국제적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

다이와사건을 계기로 지난달 미국의회에서 열린 일본금융기관문제에
대한 공청회는 부정거래문제뿐아니라 금융기관들이 안고있는 현안들도
함께 거론해 부실채권을 조기처리토록 일본측에 권고하기도 했다.

특히 미금융당국이 다이와은행에 대해 내린 전면추방명령은 다이와라는
일개은행에 그치지 않고 일본금융시스템자체를 문제삼은 것으로 볼수
있다.

일본식 숨기기와 과다보호정책이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통용될수 없음을
선언하고 경고를 발한 것이다.

전후 일본은행업계는 대장성을 정점으로 호송선단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강한 은행도 약한 은행의 속도에 맞춰 템포를 늦추면서 지원을 해왔다.

대은행들끼리도 나란히 서서 어느 한은행이 앞서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중요한 결정은 대장성에 맡기고 은행들은 시장셰어확대에만 매진했다.

대장성도 은행들도 평준화가 주는 안락함을 즐겼다.

다이와은행사건은 이같은 문제들이 농축돼 일어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이와은행에 대해 강경처벌이 내려진후 다케무라대장상과 마쓰시타
일은총재는 "미당국의 조치를 엄숙히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 이번사태가
금융시스템전체의 문제에 연관돼 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대장성은 그동안 국내에서는 금융위기극복을 위해 기존정책을 상당히
수정해왔다.

대장성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사항은 "도시은 신탁은 장기신용은행 등
21개대형은행은 절대 망하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용질서유지를 천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21행이외의
은행이라면 파산도 불사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 대장성은 이를 실행에 옮겨왔다.

대표적인 것은 효고은행의 파산이다.

아무리 부실하다해도 최대규모의 지방은행을 파산시킨다는 것은
예전에는 생각도 할 수없던 일이다.

신용협동조합 랭킹1위였던 기즈신용조합도 문을 닫았다.

금융기관들중 올들어 파산한 것이 벌써 6개에 이른다.

그런데 21행중에서도 다이와은행이 스미토모은행에 흡수합병 되게되는
사태가 초래됐다.

대장성이 호송선단체제의 마지노선으로 공언해온 도시은행에서도
은행부도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금융업계는 그야말로 거센 격랑속에 휩싸여 있다.

[ 도쿄 = 이봉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