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팔레스티나나 중동의 평화문제를 다룰때 표면적인 국제관계차원
에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팔레스티나나 중동문제는 유대교와 이슬람교라는 종교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에 복잡하게 전개되는 측면이 있다.

지난 4일 텔아비브에서 암살당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의 죽음이
하나라고 할수 있다.

이스라엘의 베긴내각시절 베긴총리가 "종교적신조에 기초한 여성의
양심적 징병거부를 인정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진보적인 노동당은
물론 내각내에서까지 반대자가 나와 정국이 혼미했던 일이 있다.

이 법안의 논리는 구약성서 "신명기"가 여성의 남장을 금하고 있으므로
군복은 남장이기때문에 종교적 양심상 징병을 거바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아무튼 라빈총리는 70년대 이후 중동지역에서 암살된 10번째 정부수반급
인물이 된다.

지난 78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캠프데이비드협정을
체결한지 3년후에 이슬람교 극단주의 군인들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또 81년 8월엔 알리 라자이 이란대통령이 테헤란에서 폭탄폭발로 사망
했고 92년엔 모하메드 부디아프 알제리 대통령이 피살됐다.

암살위기는 모면했으나 지금도 암살위협에 시달리는 중동평화협상의
주역들이 있다.

평화협상의 막후 중재자 후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은 지난 6월
에티오피아에서 승용차를 타고가던중 이슬람교 과격단체로 보이는 무장
괴한들의 총격을 받았으나 방탄차였으므로 무사했고 야세를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장은 93년강경파들에 의해 암살될 위기에 처했었으나
다행히 음모가 사전에 적발됐었다.

라빈총리는 27년간의 군생활끝에 군총참모장에 오르고 67년 제3차
중동전땐 군을 진두지휘해서 6일만에 아랍군을 대파하는 신화를 남겼다.

그는 74년 이스라엘 최초의 본토출신 총리로 선출됐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엔테베 구출작전도 그의 작품이었다.

라빈총리는 93년 워싱턴에서 아라파트의장과 팔레스타인 자치에 관한
원칙선언에 조인했고 그는 이같은 공로로 작년 아라파트의장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었다.

고라빈총리가 이날 중동평화회담지지집회에서 군중과 함께 부른 "평화의
노래"가 "대중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였다고 한다.

평화에의 길은 이처럼 험하고 긴 모양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