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는데..."

김우중대우그룹 회장이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실명 전환하는데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 3일, 재계는 완전히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로 일변했다.

한마디로 경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대우이외에 몇몇 대기업그룹의 "비자금 커넥션" 개입 혐의를 추가로
확인했다는 설까지 가세해 분위기는 더욱 흉흉했다.

재계는 당초 이날을 "기대"속에 맞았다.

주요 그룹 총수등 재계 원로들이 긴급 전경련회장단 회의를 열어 "자정
결의"를 내놓는등 국면 반전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경련회의의 의미는 반감돼버렸다.

"김"이 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대우 커넥션"은 아주 좋지 않은 "타이밍"에 터져나온 셈이다.

당사자인 대우그룹측은 물론 "유구무언"이란 자세다.

추후 조사결과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수동적인 처지다.

다른 대기업그룹들도 사정이 편치만은 않다.

대부분 그룹들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6공시절 의도적이었건 아니건
노정권과의 "거래 실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비자금건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된 대우그룹이나
한보그룹에 떳떳이 돌을 던질 수 있는 대기업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보기에 따라 대우를 비롯한 대부분 대기업들은 6공의 "특수 상황"에 의한
희생양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는 특히 한보에 이어 드러난 "대우 커넥션"이 그동안 정치권과 증권
시장 등에서 꾸준히 나돌았던 루머가 그대로 확인된 것이라는 점에 더욱
충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대우뿐 아니라 30대 대기업그룹중 상당수가 이런 저런 루머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해당 루머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고 있다.

그러나 "대우 케이스"에 비춰 이런 류의 "해명"이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갖게 될지 선뜻 자신하지 못하는 태도다.

재계 일각에선 검찰이 ''대우 커넥션''을 공식 발표가 아니라 ''여론에
흘리기'' 방식을 택한 이유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혹시 대기업수사가 본격 확대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시중에 나돌고 있는 각종 "6공비자금 괴문서"를 놓고 거명되고 있는
그룹들이 무척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점도 이런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루머는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사실 확인"을 자양분삼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재계로서는 편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실명 전환해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그룹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외형기준 8대 그룹이 모두 ''모종의 혐의''에 연루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명색 4대그룹중 하나인 대우그룹의 연루설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그렇다면
다른 기업은 정말 아무 관련이 없었겠는가"는 의구심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도 하다.

재계가 불안해하는 점은 또 있다.

대우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최근 국내외 사업을 왕성하게 확장해 왔다.

요즘은 이른바 "사업 확장기"다.

그런데 돌연한 대우 커넥션의 돌출로 당사자인 대우그룹은 물론 재계
전반의 국내외사업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됐다는 것이다.

대내외 이미지 실추는 말할 것도 없고, 내부 임직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게 됐다.

어떤 형태의 미봉도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 고민은 더욱 크다.

"대우 커넥션"은 가뜩이나 시름에 잠겨있던 재계 분위기를 "최악"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