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대통령의 거액 비자금사건이 불거져 나오기전 정부당국이나 경제계,
그리고 일반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우리 경제가 과연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점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연착륙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점이
다르다.

표현방법에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관변.민간 연구기관 할것 없이 경기의
연착륙 가능성에 이의를 다는 기관은 별로 없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제전망은 올 하반기중의
경제 성장률이 상반기의 9.8%보다 둔화된 8.6%로서 연간으로 9.1% 수준의
성장을 기록하는데 이어 내년에는 엔화약세 등에 따른 수출및 설비투자의
둔화로 인해 성장률이 7.5~7.8% 수준으로 하향 안정되면서 경제가 연착륙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 며칠사이 발표된 경제지표나 경기동향 관련 보도들은 그런
예상을 어렵게 만드는 징후들을 여러 갈래로 노정하고 있다.

경기가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게 둔화되고 있는가 하면 국제수지 적자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 기록적인 규모로 팽창할 조짐이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중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생산.소비.투자등
모든 지표의 상승률이 상반기는 물론 한달전에 비해 크게 둔화되어 경기
확장세가 사실상 끝난 듯한 분석이었다.

특히 상반기중 35.6%이던 기계수주 증가율이 9월엔 10.4%로 둔화, 설비
투자가 거의 마무리된 느낌이다.

한편 10월중에도 수출이 수입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 월간 무역수지
적자가 올들어 최저수준을 기록했지만 올들어 통관기준 무역수지 적자
총액은 10월말 현재 94억9,000만달러로 지난 91년 한해의 사상 최대치
96억5,570만달러에 육성했으며 연말까진 1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또 한은이 발표한 경상수지적자는 9월까지 이미 81억3,000만달러를
기록, 금년도 역시 91년의 최대치(87억3,000만달러)를 넘어 88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같은 실적치와 예상치들은 모두 1~2개월 전보다 나빠진 것으로서
비자금의 충격으로 장차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비자금파문의 충격은 장래문제가 아니라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경기가 급강하하고 투자심리가 냉각되는 징후가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자금수요감퇴로 회사채수익률과 콜금리가 일제히 11%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한편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비자금사건 여파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또 부동산시장에 철이른 한파가 닥쳐 건설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전국의 부도업체수는 지난 9월말까지 벌써 1만개를 넘어섰다.

비자금수사가 장기화할 조짐이 짙어보인다.

검찰의 노태우 전대통령 소환조사 결과가 기대이하이고 돈을 준 기업인
조사에 이어 노씨에 대한 추가적인 소환조사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엄정 완벽한 수사로 진실을 가려내되 신속히 해야 한다.

그래서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경제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오늘 소집될 재계 중종진회의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런 바람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