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3일로 날이 잡힌 강택민중국주석의 방한은 아무리 줄여 말해도
어떤나라 정상의 방한보다 중요한 사건이다.

중국 국가원수로 역사상 첫방문이라는 역사적 의의위에 무엇보다
한반도의 현재.장래에 대한 영향면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역사를 멀리 소급할 필요없이 수교후 3년사이 한국 전.현직대통령의
방중에 이어 이붕총리 교석전인대상무위원장의 방한은 있었지만 당.정.군을
장악한 강주석의 방한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

오사카 아태경제위(APEC)참석 볼일이 겹쳤으되 국가로의 단독방문이라는
의의를 보태려 하지 않아도 미국포함 18개국 회의 참가전의 한.중정상
대좌에서 양국관계 앞날에 대한 많은 시사가 담겨있다고 본다.

먼저 강주석 방한은 그 시작에서 끝에 이르기까지 북한과의 3각관계를
의식하지 않을수 없다.

시장경제 전환에도 불구,사회주의 명분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으로서
아무리 형편이 초라해졌더라도 혈맹이라고 자부해온 북한과의 오랜 관계를
저버림은 무리다.

지난달 6일 북경대사관의 북한 당창건 50주기념연 참석등 최근 강주석의
파격적 용심은 실리추구적 대한국 관계심화와 전통적 의리과시라는 대북한
관계유지 사이에서 줄을 타는 중국외교의 고충을 잘 드러낸 일면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중심이 한국쪽에 급격히 경도되어감은 분명하다.

우선 전년대비 40%이상의 증가세로 올해160억달러에 육박할 교역규모와
자동차등 직접투자의 급증세로 양국은 되물릴수 없는 경제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작지않은 중국의 대한접근 잠재동기는 국제 정치역학에서
찾아야 한다.

대만문제가 중심이 된 미국과의 끊임없는 마찰면에서나 아시아 주도권
경쟁자로서의 일본에 대한 견제에서 볼때 한국 내지 한반도의 지렛대 역할
은 아주 긴요한 부분이다.

이같은 지정학적 중요성은 19세기에도 마찬가지였으나 세계관과 국력이
무에 가까웠던 한국의 처지로서는 모든것을 다 잃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김영삼대통령의 최근 유엔외교에서도 비쳤듯이 경제개발 경험과 국력
증가에 걸맞게 한국의 중견국 역할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그러나 그 역할의 성패는 지도그룹의 인식과 전략여하로 결정된다.

다시말해 금후 아태지역에서의 한국의 역할은 스스로의 운명결정은 물론
다른 대소국 진로에까지도 큰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중요하며 그 토대위에
긴 안목의 효율적인 전략을 짜는 미래국가로서의 성숙성이 긴요하다.

그러려면 이번 중국주석을 맞는 국민이나 정부의 인식과 대응부터
달라야 한다.

그저 큰나라 통치자가 이웃 소국에 왕림한다는 감상, 대만문제쯤 양보는
별것 아니라는 알아서 기는 발상으로는 향후 중견국 외교강국으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결과밖엔 기대할게 없다.

대통령도 학생도 세계의 시계바늘을 똑바로 읽고 격에맞는 예로써 국빈을
대접하되 배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아는 기초부터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