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이 마침내 소명자료를 제출한데 이어 오늘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게됨에 따라 비자금수사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사건 당사자인
노씨로부터 수많은 관련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뻔뻔스런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씨는 소명자료에서까지도 비자금의 조성경위와 사용처를 숨기고 있는가
하면 야권에서는 "너도 받았지 않느냐"는 식의 진흙탕싸움이 고소와 맞고소
를 벼르는 사태로까지 번져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할 지경이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일상사라고 친다 해도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일부 악덕 기업인과 금융인들의 거짓말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떳떳지 못하기로는 여권도 마찬가지다.

민자당은 92년 대통령선거 당시의 선거자금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이내 자진공개는 하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꿔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더구나 김윤환 민자당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이 노씨로부터 관례대로 선거
자금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으나, 김대통령은 30일 이를 사실상 부인하는
발언을 해 비자금의 용처와 관련된 온갖 루머가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국민의 시선은 노씨를 직접 조사하게 될 검찰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하나같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금계좌 외에
CD(양도성 예금증서)등 무기명 금융상품으로 은닉돼 있는 엄청난 비자금의
규모를 정확히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이번 사건은 현 정권의 탄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전직 대통령이
저지른 사건이고, 그 검은 돈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온갖 크고 작은
정치.경제적 비리와 관련 인물들을 생각할때 명쾌하게 결말이 나기는 처음
부터 글렀다는 체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터이다.

그렇다면 이제 국민이 기대할 곳은 현실적으로 노씨의 입밖에는 없다.

그가 참으로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면 그 많은 검은 돈의
조성경위와 용처를 분명히 밝혀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어야 한다.

노씨는 지난 27일 대국민 사과성명에서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밤낮
없이 눈물겹도록 뛰어다니는 기업인들의 의욕을 꺾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마지막 소망"이라고 했다.

노씨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이미 큰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
했다.

거액자금이 금융권으로부터 이탈하고 사채시장은 얼어붙어 중소기업의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다.

회복세를 타던 주식시장이 맥을 못추고 있는가 하면 부동산시장은 정상
거래마저 끊겼다는 소식이다.

기업인들은 곧 있을 검찰소환에 대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우리경제와 기업인들에 대한 자신의 "걱정"이 가식이 아니라 진심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노씨는 모든 것을 솔찍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그것만이 비자금 파문을 조속히 매듭짓고 이번 사태로 입게된 엄청난 국가
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