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10월22일 일본 도쿄의 외국특파원협회는 당시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를 초청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후 일본의 최강 총리라고 불리던 다나카도 여름의 참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하고 미키 부총리와 후쿠다 대장상이 반기를 들고 사임해
곤경에 처해 있었다.

특히 10월초 발간된 월간 문예춘추에는 다치바나가 집필한 "다나카금맥
연구"라는 논문이 게재되고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샘 제임슨기자가 "미국에선 상원이 록펠러부통령
후보의 개인재산을 조사하고 있다.

총리는 정치가가 자기 재산의 조성경위를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다나카총리는 "나는 경제계출신이므로 정치에 지장이 없는한 경제활동을
계속했다.

개인적인 경제활동과 공적인 정치활동을 혼동하는 것은 납득할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납득할수 없었던 것은 다나카가 아니라 국민이었다.

다나카총리는 11월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76년 7월에 구속됐다.

또 92년 8월에 발생한 사가와규빈사건은 당시 자민당의 실력자로 다나카
-다케시타인맥을 이었던 가네마루 신부총재의 구속과 자민당의 분열을
초래했다.

가네마루는 기자회견에서 "사가와규빈에서 5억엔을 헌금으로 받아 90년
총선때 소속 의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해명했으나 그는 두달만에 전격
구속됐다.

그의 사무실 금고안엔 10억엔 상당의 금괴와 50억엔이 있었다.

그후 자민당은 분열됐고 93년 총선에서 참패해 38년만에 야당으로 전락
했다.

노태우전대통령의 비리축재 사건을 정치적으로 수습할 것이냐, 또는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냐로 의견이 갈려있는 모양이다.

정치적 수습을 주장하는 측은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정치적 파장을
축소화하기 위해 전두환전대통령의 예에 따라 부정축재 재산을 몰수하고
낙향 또는 외국이주등으로 종결짓자는 생각이다.

반면에 사법처리하자는 주장은 "법은 만민앞에 평등"하고 노전대통령의
비리축재는 이미 전직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받을만한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전전대통령의 "5공비리"를 정치적으로 수습한 결과가 노전대통령의 비리
축재로 나타났다고 볼수 있다.

범법자에게 예우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정계의 획기적인 정화를 위해서도 법에 따른 처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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