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원? 그건 너무 유명한 구절이라서 오히려 되바라진 느낌이
드는군요.

진부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가정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말하자 문객들도 웃음으로써 동의를
표시하였다.

한 문객이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였다.

"이곳은 세상과 끊어진 듯 호젓하기 그지없는 장소라 "진인구사"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보옥이 또 불쑥 참견을 하였다.

방금 아버지 가정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으면서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보옥이었다.

그런 점은 아버지를 닮았다고도 할수 있었다.

"진인구사는 무릉원보다 더욱 되바라진 느낌을 주는 이름입니다.

진인구사라는 말은 역시 도연명의 시 "도화원기"에 나오는 구절로,
"여기 사는 사람들은 진나라 때 난리를 피해 왔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곳은 후비께서 성친을 위해 머물 별채인데, 진인구사라고 하면
피난을 와서 머무는 것이 되므로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후비께
큰 실례를 범하는 이름이 되고 맙니다.

저 냇물 위에 들꽃잎들이 떠 있는 것을 보니 차라리 "요정화서"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정화서는 들꽃이 만발한 물가라는 뜻이었다.

누가 들어도 보옥의 말이 일리가 있었으나 가정은 끝내 보옥 편을
들어주지 않고 또 핀잔을 주었다.

"이놈아, 너는 말끝마다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구나"

그리고는 가정이 냇물이 흘러나오는 석굴을 바라보며 가진에게 물었다.

"저 석굴안에 제벌 큰 연못이 있을것 같은데 과연 그러한가?"

"관찰력이 대답하십니다.

저 석굴 안에는 배를 띄워도 될 만한 연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럼 배를 띄워 저 안으로 들어가보자구나"

가정과 문객들은 배를 타고 석굴 안 연못을 저어나가는 재미가 어떨까
하고 벌써부터 들뜬 표정들이었다.

보옥도 그건 색다른 재미가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가진의 대답은 일행을 적이 실망시켰다.

"연밥 딸 때 쓸 배 네 척과 놀이배 한 척을 마련하고 있는 중인데
아직 다 만들어진 배가 한척도 없습니다"

"유감이군. 저 석굴 안으로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가정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였다.

"저 산 위로 돌아가면 배 없이도 석굴로 들어가 볼수 있습니다"

가진이 석굴 위쪽 산등성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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