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종합상사가 도입된 것은 지난 75년이지만 그 구상은 사실 72년부터
잉태됐다.

제1차 오일쇼크를 당해 "어떻게 하면 달러를 펑펑 벌어들일 수 있을까"로
고심중이던 박정희대통령에게 일본 이토추상사의 세지마 류조 부사장이
"일본처럼 종합상사를 만들어 보라"고 조언을 한 것.

이같이 한국의 종합상사는 일본 종합상사를 모델로 해 탄생했지만 양자간
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우선 규모부터가 그렇다.

지난해 7개 국내 종합상사의 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7조6,700억원.

이에비해 일본 9대상사의 평균매출액은 11조859억엔이었다.

환율을 10대1로 잡으면 약 14.5배나 되는 셈이다.

이밖에도 일본종합상사는 한국종합상사에 비해 인력은 4.4배, 경상이익
규모는 9배의 우위를 보이고 있다.

자금력과 물류 조직력의 차이도 현격하다.

일본상사는 원자재로부터 중간제품 및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수직적
통합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경영진이 의사결정을 할 때도 일본상사는 방대한 해외정보를 활용한다.

이에비해 한국상사들은 상품의 개발과 생산 판매활동계획의 수립에 한계가
있다.

정보부족이 주요인이다.

가장 뚜렷한 차이는 거래구조에 있다.

일본상사들은 평균적으로 전체매출액중 수출이 14% 수입 16% 내수 45%
3국간 거래 25% 선이다.

수출보다 수입이 많고 내수는 이 둘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일본에서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점도 이토추상사가 하고 있고 심지어
룸살롱에도 상사자본이 끼여들고 있다.

반면 한국상사들은 수출 65% 수입 29%에 내수와 3국간 거래는 각각 3%에
불과하다.

수출이나 수입영업은 내수나 3국간 거래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게
일반적이므로 한국상사들의 수익기반이 그만큼 약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거래구조상의 차이는 수출경쟁력과도 연결된다.

일본상사들은 외국에다 파는것 이상으로 사들이기 때문에 거래선을 뚫기가
한결 수월하다.

반면 한국상사들은 사들이기보다는 파는데만 급급하므로 상담이 쉽지 않다.

거래구조상의 이같은 차이는 따지고 보면 양자의 탄생배경이 다른데서부터
연유한다.

일본종합상사는 19세기 후반에 미국 유럽 무역상들의 수입독점 공급독점에
대항하기 위해서 설립됐다.

이에비해 한국상사는 오로지 수출증대가 목적이었고 수입은 "자제", 내수
시장진출은 "금기"사항이었다.

어쩌다 수산물 같은 것을 들여온 사실이 알려지면 국정감사장에서 매도되기
일쑤다.

WTO협정에 따라 올해부터 의무적으로 들여오게된 쌀 수입권만해도 국내
상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 결국 대우가 들여오기로 낙착을 봤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종합상사들도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장 오는 97년부터 한국의 수입시장에 뛰어들 일본상사들과 경쟁하려면
그들과 필적할 만한 수익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강한 자금력과 소생능력을 지닌 일본상사들을 아무 대책없이 맞았다가는
한국시장을 송두리째 내주는 결과가 초래될수 있다는게 그 요지다.

요즘 국내상사들이 변신을 서두르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