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도산한 동명목재의 공장부지와 공장시설일체를 일반에 매각해
은행채무변제에 충당할 방침이다.

이승윤재무장관은 27일오후 동명목재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하영기
행장으로부터 동명목재 사후처리방안을 보고받고 이같은 정부방침을 확정
했다"

80년6월28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60년대 수출업계를 주름잡았던 동명목재가 무대뒤로 영원히 사라지게
됐음을 알리는 기사였다.

한국의 수출산업이 1,000억달러 고지에 오르기까지에는 수많은 기업들의
부침이 있었다.

앞서의 동명목재처럼 사라진 기업이 있는가 하면 삼성전자처럼 동명목재가
한창 명성을 날리던 때에는 "묘목"축에도 못끼었으나 연간 100억달러이상을
수출하는 "거목"으로 우뚝선 기업도 있다.

올해로 32회를 맞는 무역의 날 역대 수상자 명단에는 수출기업과 기업인들
의 부침과 영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제1회 수출의 날에 수상대에 올라선 기업인은 모두 7명.

삼호무역의 정재설사장 천우사의 전택보사장 영풍상사의 장병희사장
동명목재의 강석진사장 성창기업의 정태성사장 판본무역의 서갑호사장
삼성물산의 김선필사장 등이 영광의 얼굴이었다.

천우사와 동명목재 성창기업은 합판수출로 이름을 날리던 업체들이었고
삼호무역 판본무역 삼성물산은 섬유분야의 무역업체, 영풍상사는 아연 등
광산물을 수출하는 기업이었다.

65년 제2회 수출의 날에는 산업훈장이 제정되면서 4명의 기업인이 동탑
훈장을 받았다.

천우사의 전사장 판본무역의 서사장 동명목재의 강사장이 전년에 이어
연속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고 나머지 1명은 대한중석의 박태준사장(전 포철
회장)이었다.

이중 동명목재는 68년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챙긴데 이어 69년부터
71년까지는 3년연속 "수출최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린다.

성창기업과 천우사도 이 기간중 산업훈장 등을 독식해 "합판 트로이카"시대
를 구가했다.

뒤이어 70년에는 한일합섬의 김한수사장이 금탑산업훈장을 받으며 섬유
산업전성시대를 예고했다.

한일합섬은 73년에는 1억380만달러를 수출해 그해 처음 제정된 수출의
탑(1억불) 주인이 된다.

이에앞서 72년에는 역시 섬유업체인 대우실업의 김우중사장과 대한농산의
박용학사장 쌍용산업의 신현확사장이 나란히 금탑훈장 수상대에 올랐다.

70년대에는 철강 화학 조선 등 중화학업체들도 하이라이트를 받았다.

연합철강의 수출창구인 연합물산은 72년 금탑산업훈장수상에 이어 74년에는
1억달러고지를 돌파했다.

이 해에는 일신산업의 주창균사장 대한조선공사의 남궁련사장 국제화학의
양정모회장도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현대조선은 이후 76년에 3억불탑 77년에 6억불탑을 수상하고 78년에는
회사명을 현대중공업으로 바꾸어 7억불탑을 받는등 매년 수출신기록을
경신해 나간다.

한편 70년대초 직물업체인 금성산업을 대농그룹에 매각하고 시멘트사업으로
업종을 변신한 쌍용그룹 김석원사장은 75년 1억불탑을 수상한다.

김사장은 그 자신도 정치인으로 변신한 상태다.

신발업체들도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수출의 날 주역들로 떠오른다.

국제화학이 74년 업계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것을 필두로 76년에는
진양화학 78년에는 태화가 각각 금탑산업훈장을 따내면서 세계시장에 "한국
신발"의 성가를 떨친다.

80년대부터는 수출레이스의 바톤이 자동차와 전자업체들에 넘겨진다.

83년 나우정밀이 그해 최고의 수출신장률을 기록하면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86년에는 금성사 87년 삼성전자 89년 대우전자 등 가전3사가
차례대로 금탑산업훈장을 차지해 전자입국의 기틀을 다졌다.

85년에는 "포니신화"를 일궈낸 현대자동차 정세영회장이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처럼 60년대에 합판 섬유 광산업체를 주역으로 시작한 "수출 한국"의
드라마는 70년대에는 섬유 조선 신발 철강, 80년대에는 전자 자동차 등으로
주역을 바꿔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대뒤로 사라진 기업들도 무수히 많다.

64년 제1회 수출의 날에 최고상을 받았던 7개업체 가운데 동명목재 천우사
삼호무역 등 3개사는 오늘날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다.

가장 먼저 삼호방직(삼호무역의 후신)이 73년4월 부실기업의 낙인이 찍힌채
쓰러졌다.

삼호의 창업자 정재설회장은 그 뒤 대구 계명대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싯가 120억원대의 부동산을 익명으로 희사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동명목재의 몰락은 보다 비극적이다.

2차 오일쇼크후 불어닥친 국제 원목시세의 급등으로 고전하던 동명은
강석진회장 일가의 재산권분규까지 겹쳐 80년6월 도산하고 말았다.

사채운용의 귀재로 일컬어졌던 천우사도 69년 정부의 부실기업정리조치때
대부분의 계열사를 정리당한 뒤 84년에는 아예 문을 닫았다.

한동안 옛영광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천우사의 전사장은 끝내 원을
이루지 못하고 80년 세상을 떠났다.

74년 1억불탑을 거머쥐었던 연합철강과 그 수출창구인 연합물산도 바로
이듬해 권철현회장이 외환관리법 위반과 탈세혐의를 받으면서 양정모회장의
국제그룹에 넘어가는 비운을 겪는다.

그러나 권회장의 불운까지도 이어받았는지 국제그룹도 86년9월 5공화국정부
의 제4차부실기업정리대상에 올라 국제상사는 한일그룹, 연합철강은
동국제강 등으로 공중분해되고 만다.

수출업계의 신진대사는 지금도 어김없이 계속되고 있다.

불과 5년전인 90년 무역의 날에 은탑산업훈장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
하는가 했던 이동훈회장의 고려시스템은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자금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산했다.

또 대한중석과 포철의 대표로 두차례 수상했던 박태준회장도 김영삼대통령
의 취임후 뇌물수수혐의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와는 달리 제1회 수출의 날에 식산포장을 받은 삼성물산은 지난해 국내
기업 최초로 100억불탑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서갑호회장의 판본무역은 후에 회사이름을 방림방적 (주)방림으로 바꾸며
견실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영풍상사와 성창기업도 각각 광공업과 합판 등 건자재분야의 중견기업으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78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던 신발업체 태화는 신발산업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중국등 해외진출에 나서는 한편 아파트사업에 뛰어드는 등
변신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한때 영광을 누리다 쇠락한 기업과 발전을 거듭하는 기업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에대해 경영학쪽에서는 전자를 "요새형 기업" 후자를 "아메바형 기업"
으로 구별한다.

요새형 기업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둔감할 뿐 아니라 변화를 감지하더라도
현상유지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반면 아메바형 기업은 아주 적은 변화에도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결국 기업의 생명을 결정하는 키워드는 "변신의 노력"인 것이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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