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의 경영권 수호전선엔 이상없나".

끊임없는 인수합병(M&A)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기아그룹이 최근 "경영권
수호"를 공식 선언하고 나서는등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기아는 삼성 LG그룹등의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이달말께로 예정된 아산만
자동차공장 1단계 완공을 착실히 준비하는등 80년대초 "봉고신화"의 재현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일본 도쿄모터쇼를 보러 일본으로 떠나기에 앞서 서울 여의도 기아본사
회장실에서 본사 유화선부국장대우겸 산업1부장을 만난 김선홍회장(63)은
"기아의 피인수설은 루머가 루머를 낳은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적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는 맹자의 말을 인용해가며 나름대로의 수성복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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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유화선 < 부국장대우 산업1부장 > ]]]


-요즘엔 대외활동이 좀 뜸하신것 같습니다.

<>김회장=제가 하는 대외활동은 우선 두가지(한국기계공업진흥회회장과
표준협회회장)인데 그동안은 사실 미흡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자본재 산업의 육성등 그 중요성에 비추어 기계공업회장역할도 어려운 것
같고 전경련에서도 전문경영인이란 점을 배려해 부회장직을 줬는데 이렇다할
기여를 못하고 있지요.


-혹시 "내치"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그런건 아닙니까.

삼성이 기아를 인수할거라는 소문이 돌더니 최근엔 LG의 구본무회장이
"기아를 짝사랑한다"는 말을 했지요.


<>김회장=구회장의 발언은 정말 우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발적이었죠.
LG는 그런 생각이 없는 회사라고 봅니다.

하여간 짝사랑받는 처녀는 좋은 것 아닙니까.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여자
라면 뭣에다 씁니까.

기업도 마찬가집니다. 기아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얘기이겠지요.


-우연이건 돌발적이건 구회장 발언이후 두분이 한번 만나셨습니까. 아니면
혹시 전화통화라도.

<>김회장=구회장의 진의가 그게 아닌데 괜히 얘기해 봐야 오히려 서로
쑥스럽게 되지 않겠습니까.

전화통화도 없었어요.


-LG와는 그룹간 업무제휴 이야기도 많이 오갔고 또 진행되고 있는 것도
있지요.

그래서 LG의 기아인수설이 나돈건 아닐까요.(기아와 LG는 주파수공용통신
사업과 개인용휴대통신사업에 대해 서로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김회장=그래서 오해가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LG는 제가 접해본
경험으론 그런 기업이 아닙니다.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는 기업입니다.


-삼성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 이후에는 그쪽
사람들과 만나지 않으셨어요.

<>김회장=서로가 바빠서인지 삼성 사람과는 만난 적이 없어요. 그래도
공식석상에서 강진구삼성전자회장과는 자주 만나니까 특별히 만난다
안만난다 할 것도 없지요.

그분과는 만나면 재미난 얘기를 많이 나눕니다.


-강회장과 만나면 혹시 농으로라도 기아인수설같은 이야기를..

<>김회장=전혀.그런 얘기는 해본 일이 없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인수설따위는 한낱 헛소리에 불과한데 입에 올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현재 삼성이 보유한 기아주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93년 "삼성생명의 기아주식 매집사건"이 발생했을때 삼성은 "증시여건
에 따라 기아주를 다시 되팔 것"이라고 밝혔던 적이 있지요.

삼성이 실제로 기아주식을 팔까요.

<>김회장=저는 그러리라고 믿습니다. 삼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이자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 아닙니까.

삼성이 약속을 안지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약속이행
여부는 국민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그러나 2~3개월전 삼성이 국민투자신탁의 인수를 추진했을 때는 이런
이야기도 나돌았지요.

삼성은 국투 자체보다는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기아주를 노린게 아니냐
는 지적말입니다.

<>김회장=M&A(기업 매수.합병)를 전제로 해서 생각하면 별의별 추측들이
다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 상상한다면 더 깊이 생각할 문제가 많지 않겠습니까. 예컨데
기아주식을 갖고 있는 포드를 삼성이 산다면 간단하잖아요.

루머가 역시 루머를 낳더군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기아그룹 인수설은 업종다각화를 늦춘게 화근
이 됐다고도 볼수 있겠죠.

<>김회장=글쎄요. 그래서 일관성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책의
지속성이 있어야 개별 기업이나 산업이 신뢰하고 투자에 나서는 법입니다.

자동차는 종합산업이기 때문에 전문으로 해도 벅찬데 여러가지 해서는
세계를 상대로 경쟁할 수 없지요.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삼성의 진입을 막을 수 없었을 바에야 기아의 입장에선 정보통신
이나 금융업등 신규사업을 따내는 쪽으로 노력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김회장=기아는 실제로 정부가 한번 세운 정책을 밀고 나가리라고
믿었어요.

그걸 안이했다고 보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지요.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정부는 확실히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삼성의 자동차 진입 결정때 정부에선 삼성과 합작회사를 세워보면
어떻겠느냐고 기아에 제의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김회장=그런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구체적으로 특별히 준비해두신게 있습니까.

<>김회장=기아는 우선 포드.마쓰다와 함께 국제시장에서 보완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해외시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이 있고 그걸 뚫고 들어가도 여러가지
덫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아.포드.마쓰다 3사의 협력관계는 그런 어려움을 잘 극복시켜 주고
있지요.

포드가 미국시장에 우리 자동차를 연간 10만대나 팔아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포드.마쓰다가 보유한 기아 주식(21.2%)을 포함하면 적대적 M&A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안정주주 지분은 50%를 훨씬 넘습니다.


-포드와 마쓰다의 지분때문에 끄떡없다는 말씀인데 문서상으로도 보장돼
있나요.

<>김회장=자본제휴 계약서 7조에 명기돼 있습니다. 서로가 양해하지 않으면
제3자에게 지분을 넘길 수 없다고 돼 있지요.


-경영권 수호를 목적으로 한 안정주주 확보를 위해서 이런 방법은
어떻습니까.

M&A에 노출되기 쉬운 어떤 기업을 찾아 기아주식을 일정지분 소유케하고
기아는 또 그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전략을 쓸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김회장=우리도 생각 안한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 논법에
따르면 합종연형할 때는 자기보다 큰 놈하고 해서는 좋은 꼴 못본다는
약점이 있어요.

때문에 국민적 기업이 적대적 M&A에서 보호되려면 국민들의 의식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본 교세라사에 대한 미국기업의 M&A설이 있었는데 일본 국민 전체가
보호해 경영권이 넘어가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아는 소유분산이 잘된 국민기업임에 틀림없지만 뚜렷한 오너가 없다는
약점도 있지요.

<>김회장=기아는 주인이 없다는데 사실 주인이 많습니다. 종업원 한사람
한사람이 다 주인이니까요.


-주인이 많다는 것이 경영애로로 나타날 수도 있을 있을텐데요.

<>김회장=그렇습니다. 민주주의 하기가 힘들듯이 기아도 평상시엔 경영하기
어려운 점도 있어요.

그러나 위기에 봉착하면 경영하기 쉬운 측면도 있습니다. 왜 맹자도 이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적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고.


-임직원간에 단합이 잘된다는 말씀이군요.

<>김회장=아시다시피 기아는 소유분산이 잘된 국민의 기업입니다. 주인은
역시 종업원이구요.

임직원간에 단합도 잘 됩니다. 지난 일요일 기아는 전사원이 모여 한마음
체육대회를 가졌는데 루머를 불식하고 단합하자는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느꼈어요.

화이트칼라들도 회사를 정점에 두고 능률을 올려 보람있는 회사로
만들겠다며 사무직 협의체를 만들었지요.

불가의 얘기로도 3인이 모여서 내는 지혜는 문주보살(부처님 옆에 있는
지혜의 보살)의 지혜보다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종업원이 그렇게 단결해 협력한다면 올핸 흑자경영이 가능하겠군요.

<>김회장=지난해 7백억원 적자를 냈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투자가
집중된 것도 한 요인이었죠.

그러나 그보다는 자동차 3사가 벌인 무모한 경쟁때문입니다. 누구때문
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으나 무이자 60개월 할부판매를 한게 결정적인 적자
요인이었습니다.

한쪽에는 연 15%나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 쓰면서 이자 한푼 못받고 물건을
판 꼴이니 적자가 날 수 밖에요.


-그것도 경쟁 아닙니까.

<>김회장=경쟁은 경쟁이되 불필요한 경쟁이지요. 사실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정책당국의 태도가 달랐습니다. 일본에서도 무이자
경쟁을 하다가 이래서는 다 죽겠구나해서 이자를 받기로 했어요.

이게 또 담합이란 이유로 공정거래법에 걸린다고 하니까 아예 무이자
할부판매를 없애는 법을 만들어 버렸어요.


-미국과의 자동차협상만해도 일본으로부터 배울게 많지 않습니까.

<>김회장=미일 자동차 마찰은 17년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협상
타결로 마찰이 다 끝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3개월 동안 협상으로 모든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자동차야말로 너무 자랑하다가 긁어
부스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김회장=그렇습니다. 켄터 미무역대표부(USTR)대표는 사석에서 이번 미일
협상으로 일본에 본때를 보여줬는데 한국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경고
하지 않았습니까.

한미 자동차마찰은 우리가 5백만대 생산체제를 갖춘다고 떠들면서 본격화된
것입니다.

5백만대를 만들면 내수로 2백만대 써도 3백만대는 수출해야 한다는 얘긴데
외국인이 좋아하겠어요.

우리도 말을 아껴야할 겝니다.


-기아차가 경쟁사 차종에 비해 다소 비싼 것도 출혈판매를 하기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생산비용이 많이 들어 가격이 높은 겁니까.

<>김회장=글쎄요. 아제비떡도 싸야 사먹는다지만 맛있는 떡은 반드시
사먹게 되지요.

안팔릴만한 가격으로 장사가 되겠습니까. 기아차는 맛있는 떡으로 차별화
시키는 정책을 쓰고 있는 겁니다.


-통상마찰 말고도 5백만대 7백만대 하는 식으로 생산능력을 늘려 나가는게
능사냐는 점을 따져봐야 겠지요.

기아도 현재 1백만대 체제에서 1백50만대 체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김회장=산업이고 자연생태고 적조현상같은게 있을 수 있어요. 플랑크톤이
많이 생기면 적조현상 같은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환경에 맞게 목표를 수정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25일부터 열리는 이번 도쿄모터쇼에는 국내 자동차업계 종사자가 몰려
간다는 뉴스입니다.

한 5천명이나 된다 합니다. 모터쇼에서는 주로 어떤 점을 눈여겨 봐야
할까요.

<>김회장=우선 세계의 레벨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면서 자기가
벤치마킹할 것에 주목해야 하겠지요.

그 다음에는 전반적 트렌드를 보는게 중요합니다. 우리 협력업체 가운데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모터쇼에서 가서 의자만 본다고
하시더군요.

그렇지만 자동차에 대해서도 봐야 그에 맞는 의자 시트를 만들지 않겠어요.


-사전 준비물로 필요할텐데요.

<>김회장=물론입니다. 포드가 어려웠을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포드는 도쿄모터쇼에 사람을 보내면서 배낭을 짊어지고 가게 했습니다.

모터쇼장에서 나눠주는 브로셔나 책자를 손에 들고 다니지 말고 받는 즉시
배낭에 넣으라고 그렇게 했답니다.

그대신 자유로운 손으로는 차문도 열어 보고 만져보고 하면서 흐름을
읽으라고 했지요.


-회장께서도 배낭을 매고 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김회장=배낭은 아니더라도 신발은 부드러운 것으로 신고 갑니다. 복장
에서부터 준비를 소홀히 하면 세계의 레벨도 보지 못한채 피곤해서 그냥
돌아오게 됩니다.


-역시 40년 가까이 "자동차 외길인생"을 걸어오신 전문경영인의 경지를
느끼겠습니다.

그동안 후회되거나 아쉬웠던 점은 없습니까.

<>김회장=글쎄요. 후회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제가 30년전에 봤던 책을
최근에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 책에 "조국에 자동차를 바치기 위하여"라고
써놓았더라구요.

그당시만 해도 한낱 기술자인 주제에 뭘 안다고 그런 말을 써놨는지..

< 정리 = 정태웅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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