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 6공 비자금관계 속보가 TV 스파트로 비치자 시민들은 착잡한
충격속에 나라가 지향할 바를 놓고 갈피를 잡기 어려웠으리라 짐작이 간다.

보통 국민이라면 전직 대통령의 완강하던 부인이 결국 거짓이었다는
배신감에다 통치자금이란 미명의 흑막을 이 기회에 뿌리째 파헤쳐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고 고하막론,엄단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그러나 조금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빈대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듯
느닷없는 소용돌이 속에 자칫 민주주의고, 경제고, 국제경쟁이고 모두를
들러엎는 파국이 자초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6공의 거액 비자금설은 어제 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정권교체때부터 꼬리를 물었고 두달전 서석재씨의 4,000억 발설로 일단
증폭되었다.

드디어 지난주 구체화된 박계동의원의 300억관련 질의로서 올 것이 온다는
긴박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끊이지 않는 발설에도 많은 국민이 끝내 믿으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인가.

그것은 발설자가 못믿을 사람이거나, 근거가 없다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합당한 근거를 가진 부정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였다.

사실무근이니 고소를 한다, 당국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혐의를 벗겨
달라는 등 그때마다의 완강한 부인이 누구도 아닌 당사자 노 전대통령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최후의 보루가 휴일 대낮에 무너졌다.

그것도 전직 대통령이 통치자금으로 쓰던 금액중 남은 돈이라는 진술이
직근의 노씨 보좌진에서 자진형식으로 공개되었다.

485억원으로 확인액수가 는것 외에 아직 이렇다할 구체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밖의 부수사항들이 문제의 본질을 좌우할 계제는 넘어섰다.

핵심 구성요건은 번복될수 없게끔 드러났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중요시하는 것은 세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차명예금의 실제 전주로서 설사 사태호도가 국익에 유리하다고
판단을 했다 해도 맹세성 거짓을 한 점이다.

연간 2억원 이상의 국비등 여러 예우를 받는 공인으로서 어떤 이유를
붙여서도 국민앞에 거짓을 말함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수 없다.

이나라 대통령이 예산외에 막대한 통치자금을 소요하는 불가피성을
검토하기 앞서.

둘째 역대 대통령이 통치권자로 부풀려질 근거란 없다.

대통령도 엄연히 공무 담당자로서 내우외환죄 외엔 재직중 소추되지 않는
특권이 있을 뿐이다.

대북한 접촉등 여러 부문에서 초법적인 "통치행위"를 당연시함도, 그
자금의 예산외적 입출을 인정함은 수치다.

셋째는 자금출처에 관한 문제다.

대기업의 기부, 대내외 인허가 조건 자금수수가 주종이다.

이권의 대가는 당장 근절돼야 하지만 기업의 자진협력 형식 헌금도 이젠
지양돼야 한다.

단 선을 그어야 한다.

국력의 거름이 된 과거의 자의타의 헌금을 재론해선 실외에 득은 없다.

앞으로 정치아닌 통치, 예산아닌 통치자금이 있어선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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