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 생각을 말씀드리지요.

방금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도 좋지만,좀 더 생각해보면 어색한 구석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양공이 "양천"이라는 시에서 사자를 쓴 것은 아주 적절했지만,
이 정자에까지 사(사)자를 끌어다 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습니다.

저기 못을 보십시오.어디에 물이 쏟아진다는 느낌이 듭니까?

잔잔히 괴어 있는 물 위에 세워진 정자에 쏟아질 사자를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여기가 후비 성친을 위한 별채이온데, 사자는 어딘지 속된 느낌이
듭니다.

좀 더 차분하고 의미가 함축된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옥이 이번에는 아버지 가정의 눈치도 보지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사자를 가지고 서로 칭찬해가며 장단을 맞추던 가정과 문객들이 무안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이 보옥에게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정이 손으로 수염을 한번 쓰윽 쓰다듬은 후 비씩 웃으며 대꾸하였다.

"지금 이 애가 한 말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전에 우리가 새로 이름을 지으려할 때 이 애가 뭐라 했지요?

정문 바로 안에서 마주보이는 산 이름을 지으려 할 때 말입니다"

"새것을 짓는 것보다 옛것을 그대로 쓰는 것이 낫다고 하였지요"

문객 하나가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옛것을 쓰려고 하니 이번에는 속되다느니 하며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 애의 말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흠입니다"

가정이 문객들 앞에서 보옥을 슬쩍 깎아내림으로써 그들이 받은 무안을
덜어주려 하였다.

보옥은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옥이 볼 때에 아버지라는 자는 자식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존재처럼 여겨지기만 했다.

"그래도 자제분의 의견을 더 들어보지요"

점잖은 문객 하나가 보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을 보고
안쓰럽다고 생각했는지 가정에게 제안을 하였다.

가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옥더러 계속 해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보옥은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마디 더하자 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옥이라는 두 글자보다는 심방이라는 두 글자가 더 새롭고 정취가
우러나므로 이 정자 이름에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름자를 음미하듯 보옥이 가슴을 펴서 심호흡을 하며
정자 아래의 못물을 내려다보았다.

심방은 "물향기 가슴속에 스며들다"는 뜻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2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