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되돌아 간다는 믿음을 지여
왔다.

흙은 생명의 모태이자 생활의 터전이고 죽어서 돌아갈 안식처다.

그래서 흙은 고향과 조국을 상징해 주는 대상이 된다.

고향과 조국을 떠난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의 흙내음을 그리워 하고
그곳 땅속에 묻히고 싶어 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구약성서"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의 아들 야곱의 유언도 그 간절한 소망
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다른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 내 선조들 옆에 묻어 다오.

그 굴은 가나안땅 마므레앞 막벨라밭에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께서 묘자리로 쓰려고 에브론에게서 사둔 것이다.

거기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두분이 묻혔고 이삭과 리브 두분도 묻혔으며
나도 레아를 거기다 묻었다" 타향을 떠돌던 야곱은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고향으로 돌아와 묻힐수 있어서 불행중 다행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고향과 조국이 못내 그리워도 이역을 떠돌아
다녀야만 했는가하면 끝내는 낯설고 물설은 이역의 흙속에 묻히는 비운을
말아야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돌아올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먼 길을 떠날 땐 고향과
조국의 한줌 흙을 소중히 간직하고 가는 관습도 있었다.

폴란드의 작곡자이자 피아노연주의 명인이었던 쇼팽의 일화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830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해외연주여행을 떠날 때 친지들로부터
조국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폴란드의 흙을 선물로 받았다.

당시 폴란드는 제정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어 갖은 박해를 받고 있었기에
그 흙의 의미는 더욱 값진 것이었다.

그는 해외연주여행중 일어난 폴란드독립혁명이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한 나머지 파리로 망명하여 음악활동을 하다가 39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행위에는 그가 간직한 폴란드의 흙이 뿌려졌다.

한국의 초대대통령을 지낸 이승만박사도 해외로 망명을 할 때 가져간
조국의 흙을 이역을 떠돌면서도 내내 간직했다 한다.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각지역의 흙이 수입되어 이산가족들에게
무료로 배포된다는 소식이다.

그 흙이 분단의 한을 땅에 묻은 망자의 묘에 뿌려지고 또 그 흙을 화분에
담아 실향의 그리움이 달려지는 한가닥 실마리가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