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동쪽 에딘버러에서 서쪽 글래스고우까지 장장 1백20km에 걸쳐
형성돼 있는 "실리콘 글렌".벤처기업에서 연구소까지 수천개의 기업이 몰려
있는 영국판 "실리콘 밸리"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컴퓨터는 유럽시장의 35%, 세계시장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또 유럽 반도체 생산량의 20%도 이 지역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야말로 영국의 대표적인 "생산단지"다.

그러나 실리콘 글랜에 입주해 있는 상위 4백개 전자업체중 현지기업은
80여개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외국계 기업. 60년대부터 IBM 컴팩 모토롤라등 유수의
미국기업들이 이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70년대 말부터는 소니 미쓰비시
오키전자 NEC등 일본 기업들이 뒤를 따랐다.

하나같이 유럽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미.일계 기업들의 "EU포위 전략"이라고나 할까.

이쯤되면 한국계 기업들의 "EU러시"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EU진출의 교두보는 영국만이 아니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터키의 이스탄불에 합작 자동차공장을 건설키로 한 건
이 나라에 부품산업이 발달돼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그러나 보다 매력적인 요소는 "터키가 EU와 관세동맹을 맺어 내년 1월부턴
생산제품의 통관이나 쿼터배정에서 EU와 동등한 대우를 받기 때문"(정세영
현대자동차회장)이었다.

자동차 업계가 녹다운방식(knock down.현지부품조립방식)에서 합작공장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보다 "현지화"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점에선 가전메이커들이 한발 앞서있다.

LG전자 뉴캐슬공장은 상품개발 부품조달 생산 판매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동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이른바 "완결형"공장.현지부품조달비율도
품목별로 최고 70%에까지 이른다.

"뉴캐슬은 단순히 영국시장만을 위한 게 아니다.

유럽시장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공오식 LG전자 서유럽지역담당)는
뜻이다.

부품업체와의 동반진출은 이같은 현지화 전략의 연장선이다.

윈야드 인근엔 삼성전자의 협력업체인 영신 동진등이 동반 진출해
캐비넷등 컬러TV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대우전자는 프랑스 가전단지내에 5개 부품업체를 공동 입주시켰다.

대우자동차 역시 내년부터 가동되는 루마니아의 씨에로 공장에 동양이화등
5개 업체를 동반진출 시킨다는 방침이다.

"단지 통상마찰을 회피하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블록의 벽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EU시장에 접근하고
싶다면 완벽한 EU기업이 되는 게 최선이다"(최정수 대우전자 폴란드법인장).

삼성전자의 복합화전략이나 LG전자의 분산거점전략또 대우전자의 EU내
3극체제등은 접근방식만 다를뿐 타깃은 똑같다.

"경쟁력 있는 지역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해 현지를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현지화를 요구하는 유.무형의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내년 1월부턴 EU블록내 경제블록인 CEFTA(중유럽 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된다.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를 잇는 역내에선 상호무관세로 상품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게 이 협정의 골자다.

뒤집어 말하면 역외로부터의 상품이동은 더욱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45% 수준인 EU의 로컬 컨텐츠조항(현지산 부품의무조달비율)도
계속해서 강화되는 추세다.

해결의 열쇠는 무엇인가.

결국 현지화다.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품질을 똑같은 코스트로 만들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 글로벌 소싱은 한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무역마찰이나
환율변동은 별문제가 아니다."(이박준 삼성전자 해외그룹장).

"글로벌화된 기업"의 모습은 이같이 생산기술과 경영혁신을 통해
동일코스트 동일품질을 실현하는 것.

경영전략과 연구개발 생산기술개발의 거점은 "현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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