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치민시청 바로 뒤편엔 완공되고도 2년이 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지상 8층규모의 오피스빌딩이 있다.

호주의 부동산개발업자가 현지 민간파트너와 합자, 신축한 빌딩의 옥탑이
시청을 내려다보는등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2년째 사용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홍콩투자가는 하노이인근에 18홀짜리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1천2백만
달러를 투자, 골프장부지만 확보한 채 1년3개월이 다되도록 공사도 못하고
있다.

원주민들이 생태계등 환경보호를 주장하며 골프장건설을 반대하는 바람에
관할 관청에서 사업허가를 보류했기 때문이다.

최근 베트남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실패업체가 늘어나는등 베트남
투자환경을 둘러싼 각종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이중 해외투자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토지임대 문제.

베트남은 국가가 전량 토지를 소유하는 사회주의 토지정책을 고수, 사용할
토지가 부족한데다 원주민에 대한 보상및 농지전용 규제등으로 토지를 임대
해도 사용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또한 환경보호법및 문화재관리법등은 각종 시설물을 원주민들의 1백% 동의
없이는 짓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노이등 북부지역에 투자승인을 얻은 2백개 외국투자기업중 53개 업체만이
토지임대권(LRL)을 얻은 것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해준다.

이중 도요타자동차는 북부 빈푸성 미린지역에 8천9백60만달러를 투입,
자동차 조립공장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농업용지의 공업용지 전용을 규제하는
관계 법규로 인해 합자투자허가를 받고도 7개월이 지나도록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주택임대료는 베트남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외국인들이 몰려들면서 주택난이 심화되고 이에따라 집세가 연일 오름세를
보이기 때문인데 최근 하노이와 호치민의 중심가는 연간 집세가 평방m당
2천달러이다.

이는 지난해초의 1천달러에 비해 1백%나 오른 것이며 방콕의 6백80달러,
자카르타 마닐라의 4백달러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값이다.

상황은 교외지역도 마찬가지.

방콕교외가 50달러, 마닐라 자카르타는 40달러에 불과한데 비해 하노이
교외의 집세는 평방m당 4백달러, 호치민의 경우 2백50달러에 달한다.

전기 도로 통신등 열악한 인프라시설은 베트남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할
난제다.

전기의 경우 하노이 호치민등 주요 도시에서도 1주일에 평균 2회정도, 1회
평균 5시간씩 정전되는게 상례화돼 있다.

하노이에서 가방공장을 운영하는 해남물산 박철욱사장은 "공장을 차리려는
투자자는 반드시 자가발전시설을 갖춰야 한다.

또 전압이 1백80V에서 심하면 2백50V까지 수시로 변해 자동화설비를
갖췄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라고 부족한 전기실정을 전한다.

통신시설은 전화를 설치하는데 신청후 약 6개월내지 1년, 팩스는 최소한
8개월이 소요될 정도로 낙후돼 있다.

서울~호치민간 전화요금은 분당 4달러로 통신비가 운영비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베트남에선 자동차가 시속 20km이상의 속도를 낼수 없을 정도로 도로
상태가 열악, 물류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작년말 현재 베트남의 총연장 도로는 약 10만5천km.

그나마 도로포장률은 약 10%에 불과하다.

도로마다 전쟁이후 개.보수가 이뤄지지 않고 또한 최근 시장경제로 옮겨
가며 물동량이 많아지면서 도로상태가 더욱 악화됐다.

따라서 비행기를 타기가 힘든 근로자들은 최대명절인 구정휴가때 고향을
방문하는데 최소 10일을 잡으며 특히 북부에서 남부로 가거나 중부산악지대
로 가는 경우등에는 1개월씩 걸리기도 한다.

KOTRA호치민관의 윤강덕과장은 "공장부지를 확보해도 도로 전기등은 투자
업체가 해결해야할 경우도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투자계약을
할때 직접 현장을 답사, 각종 인프라시설 여건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논리없는 정책과 빈번한 법규개정도 투자자들을 당황케하고 있다.

승용차에 4명까지만 탈수있도록 지난 8월1일자로 공포된 교통법이 단적인
예.

그러면서 크기에 관계없이 벤츠승용차에 한해서는 5명이 탈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두었으며 50cc급 소형 오토바이에 5~6명이 타는 것은 규제하지
않는등 앞뒤가 맞지않는 법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또 어떤 법은 공포돼도 시행여부가 불확실한 경우가 있다.

최근 하노이에서 베트남의 법규관행을 잘몰라 도산한 일본의 오토바이
헬밋업체의 사례는 투자업체들에 경종이 될만하다.

베트남 교통부가 "오토바이에 관한 법률"을 개정, 지난 6월부터 오토바이
이용자는 반드시 안전모를 쓰도록 하게 하자 이 회사는 특수를 틈타 안전
헬밋 50만개를 들여왔다.

그러나 안전헬밋에 관한 규정이 시행시점이 되자 이유없이 유야무야돼
버렸으며 안전모를 찾는 오토바이 이용자는 한사람도 없어 일본의 헬밋업체
는 도산해 버린 것이다.

노동법도 비합리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식민지배를 받은 프랑스및 독일의 노동법을 답습, 근로자의 편익위주로
구성돼 있다.

현행 노동법은 회사가 설립되면 기업은 반드시 6개월이내에 노동조합의
구성을 지원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해고사유가 성립되는 경우도 보통 까다로운게 아니다.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사전에 관할 자치단체 노동청에 해고사유를
통보해야 하는데 근로자의 잘못을 입증할 명백한 현장증거가 없으면 해고
시킬수가 없다.

근로자가 1주일씩 무단결근한후 아파서 출근못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해당 근로자가 1주일동안 아파서 결근한 것이 아니라 무단결근이라는 현장
증거를 사용자가 확보하지 않으면 해고사유가 안된다.

이와함께 연금 퇴직금 의료보험 노동자복지보험은 물론 우리나라가 지난
7월에야 시행한 고용보험과 각종 수당에 관한 규정까지 노동법이 강제하는
등 사용자에게 전혀 융통성을 주지 않고 있다.

또 인민위원회(우리의 시청 또는 도청급)와 산하 노동청및 노동조합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기업에 관한 정보를 수시로 교환하는 점도 투자자가
유의할 사항이다.

"근로자들이 손재주가 있고 눈썰미가 있지만 "공동생산 공동분배"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 시간만 때우려는 습성이 있고 그러다보니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다. 잦은 결근과 높은 이직률이 이를 입증한다"

하이퐁현지 부산비나파이프의 이희명관리부장은 이들의 근로의식이 점차
개선되는 추세지만 저임금만 바라고 무턱대고 들어왔다가는 실패확률이
높다며 현지 사정을 잘 파악할 것을 당부했다.

이와함께 하위직 공무원들의 부정부패와 사업을 위한 각종 인.허가 절차가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것도 외국투자자들을 괴롭히는 요소다.

창구일원화가 안돼 있어 공장을 하나 세우려해도 최소한 6~7개의 관계부처
에서 30개이상의 도장을 받아내야 한다.

또한 특정부처 고위층의 도장을 받아내도 제2,제3의 부처에서 하위직에서
부터 투자승인을 일일이 받아내야 한다.

특히 모든 의결이 만장일치제로 돼있어 관계자 전부를 대상으로 각개격파
식의 로비를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종 급행료나 뒷돈 뇌물등이 거래되는 것은 물론이며 하위직
공무원들의 경우 뇌물등을 바라고 결재를 미루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 방형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7일자).